▲ <삽화=류상영>

<아름다운 중학생 향숙을 생각하는 윤길동>

학산 면소재지에서 장사를 하는 집 딸들이나 공무원 딸, 심지어는 중학교나 국민학교 선생 딸도 향숙이만큼 피부가 곱지 않고 무의 속살처럼 하얗지가 않다.


향숙이는 피부만 투명하도록 흰 것이 아니고 커다란 눈망울 하며 반듯한 콧날에 도톰한 입술은 도시 학생들 뺨칠 정도로 예쁘다. 얼굴 예쁜 것들 치고 얼굴 값 하지 않은 것들 없다고 한다.


그런데 향숙이는 예외다. 얼굴만 예쁜 것이 아니고 마음씨고 비단결처럼 곱다. 고등학교 까지만 졸업을 시키면 장차 서울에 있는 은행원이나, 부잣집으로 시집을 보낼 생각이다. 굳이 힘들여 짝을 찾지 않아도 향숙이 정도의 미모에 비단결 같은 마음씨면 부잣집에서 서로 며느리로 달라고 앞을 다투어 중신애비를 보낼 것이다.


그렇게 미래가 활짝 열려 있는 향숙이 불치병이나 같다는 신병에 걸렸다는 말이 너무나 엄청나서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방바닥이 꺼져라 한숨만 새어 나온다.


"골백번 한숨을 쉬어 봐야 소용이 읎어. 나는 이 짓이 좋아서 하는 줄 아남? 난도 다른 여자들처럼 좋은 남자 만나서 조석으로 지아비 밥상 해 올리고 떡두께비같은 아들 낳아서 잘 살고 싶은 생각이 왜 읎겄어. 하지만 워틱햐. 누가 이릏게 살라고 시켰다믄 벌써 목구녘에 칼을 물고 죽었을 거여. 하지만 시킨 사람이 읎잖여.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너는 이릏게 살아야 한다고 하늘이 점지를 해 줬응께 죽지 못해서 이릏게 사는 거잖여. 그랑께 맘을 다져 먹는 수 벢에 읎어. 허긴, 하나 벡에 읎는 딸이 신병에 걸렸다는 말을 들응께 하늘이 무너지는 거 같겄지. 그릏지만 워틱햐. 너는 그릏게 살아야 한다는 팔자가 이미 정해져 버렸는데. 난도 우리 집에서는 귀한 딸여. 내가 이릏게 키는 도토리만하게 생겼지만 어릴 적부터 이쁘고 착하다고 근동에서 소문이 자자했어. 내가 이 질로 들어서지만 안했다믄 나도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고 있을 사람이여. 하지만 내 팔자는 이릏게 살라고 정해져 버링께 아부지 어머도 방법이 읎는 모냥여. 내가 죽으믄 죽어도 내림굿을 받지 않겠다고 버팅께 신이 승질이 나서 내 남동생을 건드려 뻐렸잖여. 보통학교 삼 학년까지도 똑똑하고 공부 잘한다고 동리에서 소문이 났던 아여. 집에서는 효도 잘햐, 동리 사람들한테 꼬박꼬박 인사 잘햐. 흠을 잡을라고 눈을 뒤집어 까고 찾아봐도 찾을 수 읎던 효자가 내 동생이여. 그런 동생이 즘심 잘 먹고 아부지한테 홍시 하나 따 준다고 감나무에 올라갔다가 떨어져서, 그 질로 꼽사가 되버렸잖여. 그걸 생각하믄 시방도 기가 맥히다 못해 피눈물이 나지. 하나 벢에 읎는 아들놈이 팔자에 없는 꼽사가 돼서 남들한테 병신취급 받고 살게 되었응께 눈에 보이는 거시 머가 있겄어. 농사고 머고 다 때려치우고 남동생 꼽사를 고칠라고 백방으로 뛰어 댕겼지. 그라던 던중에 묘향산, 금간산 말여. 금상산에 가면 건봉사라는 절이 있다고 하드만. 건봉사에서 한참을 올라가면 쪼맨한 암자가 하나 있는데 거기서 수도를 하고 계신 스님이 그러시드랴. 딸내미가 대가 쎄서 신을 거부항께 신이 동생에게 살을 내린거라고 말여. 그랑께 워쩌겄어? 나 같은 지지바가 눈에 보이겄어? 집으로 오는 그날로 신어머님을 정해서 내림굿을 받았지. 아! 그랬더니 참말로 신기하게도 동생 허리가 그짓말처럼 펴지더라 이거여! 하도 신기해서 서울에 있는 병원에 데리고 갔지. 엑스레인가 하는가 하는 거를 찍어 봤더니, 아 참말로 아무 이상도 읎다는 거여. 나는 그 질로 집을 나와서 신어머님 집에서 살기 시작했구먼……"


꼬막네는 새삼스럽게 고향집을 떠 올리니까 눈가에 눈물이 그렁하게 차오른다. 담뱃재를 재떨이에 톡톡 털고 나서 저고리고름으로 눈물을 찍어내며 멀거니 허공을 바라본다.


"누가 그라데. 신병이라는 거시 들라믄 조상 중에서도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있거나, 어려서 죽은 총각이나 츠녀 귀신이 있을 거라고 말여. 내가 들은 말인즉, 젊어서 억울하게 죽은 귀신이 훼방을 놀라고 착한 사람 몸에 들어온다는 거여. 하지만 암만생각해도 우리 조상에는 그릏게 억울하게 죽은 사람도 읎어. 남 집안은 전쟁 때 한 두 명은 폭탄을 맞아 죽었거나, 억울하게 개죽음 당한 사람들이 한 둘은 있다고 하든데, 우리 집안에서는 그런 사람도 읎단 말여. 그랑께 내가 워티게 꼬막네 말을 믿겄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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