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4장 자운영 한 송이 꺾어 들고
| ▲ <삽화=류상영> |
<윤길동을 나무라는 꼬막네>
"워디서 들은 귀는 있구먼. 꼭 억울하게 죽은 귀신만 들어오라는 법은 없구먼. 조상 중에 똑똑한 조상이 있어서 따슨 밥 세끼는 먹고 살게 할라고 들어오는 수도 있구먼. 이 짓이 보기에는 거러지 사촌 같지만 밥 굶는 일은 읎거든. 그릏다고 떼 돈 벌 일도 읎어. 꼭 돈이 떨어질만하믄 딱 먹고 살만큼만 돈이 들어 옹께, 참말로 신기하기도 하지."
"우리 집안에 똑똑한 조상이 있으믄 족보라도 있지. 족보도 읎는 집구석에 머 대단한 조상이 있겄어."
"아니땐 굴뚝에서 연기나는 거 봤남? 조상이 아니라면 가찹게 사는 그 누군가 억울한 한 원혼이 있을껴. 암, 반드시 그릏고 말고."
꼬막네는 윗방 신당을 향해 돌아앉았다. 제단에는 산신령과 부처를 같이 모시고 있다. 벽 한 가운데는 서툴고 조잡하게 그린 최영장군 초상화가 붙어있다. 파리똥이 드문드문 눌어붙어 있는 최영장군을 지그시 노려보다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예! 장군님, 어린 청춘을 누가 괴롭히고 있는지 점지해 주셔유. 예! 장군님 하고 중얼중얼 거리는 목소리로 최영장군을 불렀다.
윤길동도 신당을 바라본다. 제단 양쪽에는 촛불이 하늘하늘 타고 있다. 제단을 바라보지 않았을 때는 향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제단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까 향냄새가 진득하게 풍겨온다. 꽁초를 대충 눌러 끄고 새담배에 또 불을 붙였다. 벌써 대여섯 개비를 줄담배로 피웠는데도 입 안이 쓰지 않다. 오히려 담배 연기가 달게만 느껴진다. 혼잣말로 중얼중얼 거리고 있는 꼬막네를 바라보던 시선을 밑으로 내린다. 옆에는 영동에서 한약을 제일 잘 짓는다는 자생한의원에서 지어 온 한약 한 첩이 있다. 문종이로 싸서 노끈으로 묶여 있는 한약뭉치를 쓰다듬는 손끝이 자꾸만 달달 떨린다.
"햐, 향숙아, 또 아픈겨?"
오늘 중으로 논둑 옆에 골을 파 놓지 않으면 모심는 일이 며칠 늦어진다. 그래서 새벽부터 논에 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향숙이 방에서 모리댁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디가 또 아픈데?"
윤길동은 향숙이 아프다는 생각에 삽이며 괭이를 챙기다 말고 향숙이 방문을 열었다. 지금 쯤 일어나야 할 향숙이 이불속에 누워있다. 누워 있는 향숙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끼며 방으로 들어갔다. 향숙은 모리댁이 어깨를 흔들어도 기척을 안했다.
"햐……향숙아, 야가 또 왜 이라능겨?"
모리댁이 금방 울음 섞인 목소리로 이불을 걷어냈다. 향숙을 일으켜 앉히려고 목 밑에 손을 집어넣었다.
"어머, 아픈데는 하나도 읎는데 기운이 하나도 읎구먼."
향숙이 가늘게 눈을 뜨고 목 밑에 들어와 있는 모리댁의 손을 밀어낸다.
"저……정신이 들었구먼. 왜 기운이 읎능겨? 응?"
"몰라. 그냥 자꾸 잠만 와."
"툭하믄 아프다고 누워 있응께 기가 약해졌나벼. 기운이 그릏게 읎다믄 오늘 핵교는 가겄어?"
윤길동은 향숙의 이마에 손을 얹어 본다. 열기는 없는데 감촉이 금방 숨을 넘긴 사람처럼 미지근하다.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야 가 이르다 참말로 죽는 거 아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다급하게 물었다.
"못갈 거 가텨."
"암만해도 안 되겄다. 오늘 만사를 재껴두고 읍내에 나가서 보약을 한 첩 지어 오든지 먼 수를 내든지 해야겄다."
"오늘 농두렁 손보기로 했잖유."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