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의 아쉬움을 달래려는 각종 모임으로 도시가 활기를 찾는 듯 보이는 한 해의 막바지에서 숨 가쁘게 달려온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된다. 전직 대통령 두 분을 떠나보냈고 사회적으로도 거대 담론을 놓고 치열한 쟁투가 벌어졌다. 대부분 현재 진행형이지만 모두가 큰 폭발력을 지니고 있는 사안인지라 향후 추이에 따라 이 나라가 어디로 흘러가게 될지 자못 궁금하기만 하다.

우리 사회엔 유난히 끼리끼리 문화가 발달해 있다. '연고주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무언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끼리 적절히 관계하거나 거래하는 배타적 소통에 다름 아니다. 그것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 시중에 떠도는 소문만으로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남자들이 사석에서 질시어린 심정으로 나누는 대화 중, 대한민국에 존재한다는 '3대 마피아'나 '5대 철옹성'에 관한 이야기는 이제 하나의 신화가 되었다.

그 내면을 살펴보면 매우 충격적이다. 거기에는 학연과 지연, 심지어 군대의 연까지 망라하는 집요하고도 끔찍한 집단무의식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주변을 돌아보아도 이런 면에서 자유로운 사람을 찾기가 힘들다. 필연적으로 맺을 수밖에 없는 가정과 학교, 직장, 친인척 관계를 넘어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관계망을 가지고 있는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독야청청 홀로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수많은 관계야말로 한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주된 지표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마당발'이라고 불리는 사람의 경우 어떤 집단 내에서 그들이 끼치는 영향은 작지 않다. 기실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이 사회의 메커니즘이 작동하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예열을 하고 불을 지펴 바퀴가 굴러가게 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것이 순기능이라고 하면 사족을 달 이유가 없다. 하지만 문제가 그렇게 간단치 않다는 것이다.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 없지만 갖가지 사회 갈등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옳고 그름을 가리기보다는 내 편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잣대가 되어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것을 보게 된다. 이러한 여파가 작은 집단 안에서만이 아니라 국가 대사에 이르기까지 전이되어 수많은 갈등이 일어나는 것을 지금 생생하게 목도하고 있다. 논리와 정당성은 사라지고 자기 집단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거의 막무가내 수준의 행태를 우리의 눈앞에서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배움이 짧아 그러한 현상을 학문적으로 풀어내지 못하지만, 결국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에 대한 이해의 문제로 좁혀볼 수 있을 것이다. 흔히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가 있다. 여러 가지 함의가 들어있는 말인데 여기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알게 모르게 우리의 思考와 행동 패턴을 구속하는 패러다임, 시대는 21세기이건만 우리의 행동 양식은 아직도 과거의 낡은 시간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다. 자율과 책임을 바탕으로 중론을 모아 합의한 결과에 승복하는 민주적 절차보다는 힘을 가진 사람을 중심으로 한 정파적 이해에 기대어 사익을 추구하려는 바람직하지 않은 패거리문화가 이 사회를 뒤덮고 있지 않은가. 이것이 바로 불행의 씨앗이라고 생각한다.

개탄스럽지만 이는 엄연한 현실이다. 이 슬픈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지금도 찬바람 몰아치는 겨울의 거리를 헤매고 있다. 용산에서, 세종에서, 우리의 젖줄 4대 강에서. 법과 질서를 앞세우며 국민들을 몰아세우고 있는 권위적 정부를 맞아, 패거리 안의 존재가 아닌 생각하고 판단하는 한 사람의 고귀한 인간으로서 생명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지혜로움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이다.

▲ 김홍성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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