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삽화=류상영> |
어스름 어둠이 내려 깔릴 즈음에 토끼굴 앞을 지나치고 있을 때였다. 대창으로 풀숲 여기저기를 마구잡이로 쑤시고 다니던 동네 사람들 중 어느 한명이 토끼굴을 한번 뒤져보자고 제안했다.
"설마, 저기 숨었겄어?"
"그려, 바보 숙맥이 아닌 이상 눈에 뻔히 보일 장소에 숨어 있을 턱이 읎어."
"그람, 대관절 워디 숨어 있는 거여."
사람들은 잠깐 토끼굴 앞에서 멈추기는 했지만 굴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윤길동도 밖과 다르게 이미 캄캄해진 굴 앞에서 멈췄다. 그러나 몇몇 사람이 한마디 씩 던진 말을 바람결에 흘려보내고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아녀, 누가 가서 쇠깽이 좀 한다발 꺾어와."
일행의 가운데 섞여 있던 이병호가 걸음을 멈추고 이빨을 지그시 갈며 지시를 했다.
이병호의 이빨 갈리는 소리에 몇몇이 흩어져서 소나무 가지를 한 다발씩 꺾어왔다.
이병호는 토끼굴 입구를 소나무 가지로 막으라고 지시했다. 소나무가지 사이에 마른 삭정이를 집어넣고 불을 붙였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몇이 저고리를 벗어서 연기가 굴 안으로 들어가도록 부채질을 했다.
그려, 어채피 캄캄해져야 산을 내려 갈팅께 부채질이라도 하믄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났지.
윤길동은 몸이 안 좋아서 오늘은 집에서 쉬고 싶었다. 그러나 이병호의 눈 밖에 났다가는 도지로 붙이고 있는 다섯 마지기 논을 뺏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수색작업에 따라 나섰다.
바위에 걸터앉아 곰방대에 불을 붙이며 소나무가지에 불이 붙기 시작하는 광경을 지켜봤다. 온 종일 비봉산을 이를 잡듯 뒤지고 다녔더니 다리가 천근만근 무쇠처럼 무거웠다.
갸 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삼팔선을 넘지. 여즉까지 이 산에 숨어 있을리는 읎지.
동네 사람들 대부분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처럼 윤길동도 형제들이 비봉산에 숨어있을 거라고 처음부터 믿지를 않았다. 피곤한 얼굴로 토끼굴 앞을 바라보고 있다가 동네를 내려다보았다. 동네를 덮고 있는 하늘에는 저녁 짓는 연기가 타원형의 구름처럼 떠 있다.
"내 앞에서 비켜!"
"앞을 가로 막는 놈들은 죄다 죽여 버릴텨!"
날카로운 비명소리와 함께 형제가 굴 밖으로 후다닥 뛰어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멍청하게 불타는 소나무를 바라보고 있던 동네사람들은 멧돼지처럼 거칠게 튀어 나오는 형제의 기세에 양쪽으로 갈라지며 길을 터 줬다.
"저……저 놈들을 안 잡고 뭐 하능겨!"
"증신차려! 증신 차리고 빨리 저것들을 잡앗!"
이병호 부자도 깜짝 놀라서 멍하니 형제가 도망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느 순간 정신이 번쩍 든 이병호가 몽둥이로 땅을 내려치며 고함을 질렀다. 그에 뒤지지 않을세라 이동하의 발악적인 목소리가 어스름한 솔밭에 내려앉기도 전에 동네사람들이 우루루 뛰어갔다.
생소나무 타는 지독한 연기와 열기에 취해있던 형제는 멀리 도망가지 못했다. 붙잡히기라도 작정한 사람들처럼 망개나무 가시가 무덤처럼 수북하게 가로막힌 곳으로 도망을 가다가 붙잡히고 말았다.
"바……밧줄을 갖고 와. 밧줄을 가지고 와서 단단히 묶어."
박태수를 비롯해서 몇 명이 형제의 멱살이며 어깨 허리춤을 단단히 움켜쥐고 이병호 앞으로 끌고 왔다.
"쥑여!"
"내가 저승에 가서도 이 놈의 웬수를 갚고 말팅께."
형제는 악에 받친 목소리를 토해내며 이병호 부자를 번갈아 노려보았다. 이병호는 눈도 끔쩍하지 않고 형제를 차갑게 노려보았다.<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