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부, 파미르고원의 호수와 설산

▲ 1.구름속의 무즈타그아타봉과 카라쿨리 호수. 2.호수와 만년설을 배경으로 청주삼백리 현수막을 들고. 3.파미르고원 카라쿨리 호수의 파오마을. 4.고 지 현옥 산악인 흉상 앞에서 청주삼백리 회원들과 함께. 5.고 지 현옥 산악인 추모제에서. 6.기념품을 팔고 있는 마을사람들. 7.파미르고원 계곡을 건너가는 다리. 8.실크로드의 옛길 흔적.
카미르고원의 카라쿨리 호수에 도착해 파미르고원을 넘어가고 있는 실크로드를 바라보며 여기에서 돌아가야 한다는 아쉬움 속에 호수와 만년설을 바라보고 있다.
파미르고원의 카라쿨리 호수는 이곳을 찾는 모든 여행자들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들려가는 곳이다. 고원지대의 유일한 휴식처요, 대피소요, 연락처이기 때문으로 옛날의 대상이나 군사들이 주둔지나 휴식처로 대피소로 이용하던 곳으로 지금은 관광지로 휴게소로 인기 있는 곳이다. 이곳의 지형과 지리상으로 꼭 들리는 장소가 된다.
카라쿨리 호수는 해발 3600m의 높이에 있어 일반인들은 고산증세를 느끼는 곳으로 우리 일행 중 한사람이 두통을 호소한다. 버스를 타고 어렵지 않게 실크로드를 밟아보고 있지만 고원과 협곡으로 이어지는 험악한 산길을 보니 고선지 장군이 다시 생각난다. 장군의 파미르고원 원정은 지금처럼 장비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1만의 군사들과 이곳을 넘어 갔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고 그 숨결이 아직도 남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만년설의 그림자를 호수에 담고 있는 아름다운 모습의 카라쿨리 호수를 보며 지구촌의 많은 산정에 호수들이 있으나 백두산 천지의 모습이 그 중 가장 멋지고 아름답고 경외감마저 들게 한다는 생각이다. 한 겨울의 은백 세상, 봄날의 꽃 잔치, 여름의 녹색향연, 가을의 붉은 단풍으로 사계절의 특색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백두산 천지의 모습은 다른 어느 곳과 비교를 해도 단연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자랑할 만하다.그 백두산을 우리는 남의 나라 국경선을 넘고 특별한 대우를 받아가며 열심히 찾아가고 있다.
카라쿨리 호수에서 바라보는 만년설산의 봉우리는 무즈타그아타(7546m)로 무즈타그아타는 곤륜산맥의 최고봉(초고봉 울르무즈타그·7724m)은 아니지만 여름철 등반이 가능한 설산으로 최근에는 8000m급을 등반하기 전에 고소훈련지로 많이 이용하고 있는 곳이다.
무즈타그아타(muztag ata)는 원주민 말로 무즈타그 '얼음을 안은 거대한 산'을 뜻하며 아타는 아버지를 뜻하는 말로 설산(雪山)의 아버지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원주민인 키르기스인들은 이웃한 콩구르(7719m)산보다 무즈타그아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무즈타그아타는 1956년 중국·소련 합동대(대장 beletsky)가 초등에 성공했고, 우리나라에서는 1991년 7월28일 청주의 서원대팀(지현옥·장철기)이 노멀루트로 등정한 바 있다.
파미르고원의 산들을 찾아보며 자료마다 내용이 다른 것을 발견하는데 궁거얼산이나 무즈타그아타산에 대해 이름도 여러 가지로 높이·위치 등이 모호한 점이 있는 것 같다. 중국어를 우리말로 옮기며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으나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무즈타그아타산을 살펴보니 무스타거산 (7546m) 파미르고원 동쪽 끝에 남북으로 이어진 카슈가르산맥 중에 있는 고봉이다. 빙하와 빙식곡(氷蝕谷:유자곡)이 있는 수려한 산으로, 중국과 인도를 연결하는 교통로로 예로부터 잘 알려져 있다고 설명을 하고 있으나 최근 발행한 중국지도에는 7509m로 소개돼 있다.
지현옥과 장철기, 충북의 산악인들이 한국 초등을 한 무즈타그아타 앞에 서니 이곳에 대한 또 다른 반가움이 밀려온다. 짧은 시간 함께했던 지현옥 산악인에 대한 그리움과 같은 추억을 기리는 마음에서이다. 점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가고 있는 인물이나 한국의 산악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순수했던 산악인으로 그를 기억한다.
지현옥은 1993년 5월10일 현지시간 오후 7시45분쯤 동료 2명과 해발 8848m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름으로써 한국여성으로는 최초로, 세계여성으로는 3번째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는 쾌거를 올린다. 1998년 7월에 여성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파키스탄 히말라야 가셔브룸 제2봉을 무산소 단독 등정하며 한국의 독보적인 여성 산악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고 있었으나 마음고생이 많았던 산 친구이다.
지현옥은 1999년 4월 엄홍길과 함께 열 번째로 높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봉의 정상을 밝고 내려오던 중 실종됐다.
나는 그가 이룩한 '초등이다, 무산소등정이다'라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순수 산악인으로 더 기억을 하고 싶다. 물론 그가 이룩한 한국산악 등정사의 업적은 대단한 것임에 틀림이 없지만 지방 산악인으로 열악한 여건에서 원정비용을 만들기 위해 짐꾼노릇을 하기도 하는 남모를 가슴앓이를 하며 산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산악인이였기 때문에 더 기억을 해주고 싶다.
지현옥이 백두대간을 종주할 때 지원해 주며 진부령까지 완주를 하고 함께 돌아오는 캄캄한 봉고차의 뒷좌석에 짐짝처럼 실려오며 나누던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생각난다.
"왜 때가 지났는데, 시집은 안 갈 거요?"
"그런 분은 진작 산 꾼이 안 된 이유가 뭐지요."
"글세……."
동문서답 하듯이 나누고 있는 대화이나 이미 서로가 그 대답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실제 그가 좋은 배필을 만나도록 하기 위해 어울리는 남성과 다리를 놓다가 말았으니 그것도 하나의 추억으로 남는다. 산 친구는 만년설을 그리워하다 그 만년설에 영원히 묻히고 말았지만 내 마음속에 남아있는 산악인 중 한사람이다. 이런 연유로 그가 오른 무즈타그아타봉이 더 반가운지도 모르겠다.
매년 고 지현옥 산악인 추모제에서 당시 에베르스트를 함께 원정한 한국 여성 산악인들이 참여하고 있다. 고상돈 산악인은 제주출신으로 충북에서 산악 활동을 했다.
만년설산과 호수를 배경으로 파오마을이 있다. 무즈타그아타봉은 구름 속에 숨어 아쉬움만 남겨 주고, 보고 싶고 담고 싶은 것은 많은데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카라쿨리 호수 서쪽으로 파미르고원을 넘어가는 길은 이어지고 파오로 만든 마을이 호수의 초원을 따라가며 보인다. 흰색의 파오는 근래에 시멘트로 만든 고정식 파오집이고 갈색은 펠트로 만든 이동식 파오집이다. 현대화 속에 유목생활도 줄어들며 파오의 모습도 변하고 있는 것 같다. 하긴 우리들의 정겨운 초가집도 민속마을에나 가야 볼 수 있다. 호수 주변은 주민들이 관광객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며 혼잡스럽기만 한데 파오 앞에 전통의상을 입은 아이들의 웃는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천정이 뚫려 있는 파오로 만들어진 식당에서 하늘을 보며 식사를 하는 별난 체험을 해본다.
카라쿨리 호수의 넓이가 100만평이고 깊이가 200m 가 넘는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호수의 물을 원주민들이 그대로 먹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 음식점, 낙타, 오토바이, 차량들 모두가 호수를 오염 시키고 있는데 앞으로 호수가 어떻게 될까 궁금하다.
서쪽으로 난 길을 따라 고원의 저편으로 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돌아보고 또 돌아본다.
만년설과 호수를 뒤로 하고 고원을 내려오는데 계곡 건너편에 실크로드의 흔적이 원형으로 남아 있는 부분이 눈에 들어와 달리는 차에서 한 장 찍어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 길을 오르내리며 지나갔을까.
사람과 짐승 모두가 한 발자국만 미끄러져도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계곡 물속으로 굴러 떨어져 시신도 찾지 못할 것 같다. 옛길을 걸어보지 못함이 아쉽다.
돌아오는 길 파오가 있는 마을을 지나고, 초원 위로 양들이 풀을 뜯는 모습을 보며, 건너편 계곡으로 이어지는 험로를 따라가면 어떤 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고선지 장군과 지현옥에 대한 생각을 가슴에 묻고 버스에 실려 가는 나그네가 돼 발길을 카스로 향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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