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도구 ·인두꽂이 등 활용

사람이 다른 동물들과 차이가 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불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했다는 것이다. 불을 이용하여 문명의 꽃을 피워왔는데, 불을 처음 쓰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50만년전으로 알려져 있다.


예부터 사람이 살았던 집터에는 불 땐 자리들이 남아 있는데, 화로가 이 자리를 대신한 것으로 여겨지며 오늘날의 첨단 난방기기로까지 발전해 왔다. 화로는 숯불을 담는 그릇으로 불씨를 보존하거나 차, 찌개를 끓이고 밤, 고구마 등을 구워먹는데 쓰일 뿐만 아니라 바느질할 때 인두를 꽂아 뜨겁게 달구어 쓰는 인두꽂이로 까지 활용되었다.


종류로는 방과 대청에서 쓰는 큰 무쇠화로에서 외출할 때 가마안에서 쓰는 손화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재료도 질그릇, 곱돌, 놋쇠, 무쇠 등 여러 가지가 있다. 화로는 부엌, 마루, 안방, 건넌방, 사랑방에서부터 뜰이나 대문 안팎의 마당 어느 곳이나 놓을 수 있다. 농가에서 흔히 쓰던 질화로는 자배기를 닮아 둥글넓적하고 아가리가 쩍 벌어졌으며 좌우 양쪽에 손잡이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받침은 달리지 않는다.무쇠화로는 질화로와 비슷한 모습이나 손잡이가 밖으로 돌출되고 바닥에 발이 셋 달린다.놋쇠화로는 상류층에서 많이 사용하였는데, 비교적 너른 전이 달리고, 다리는 개다리족반과 같은 모습을 지니고 있다. 돌화로는 흔히 네모꼴 또는 긴네모꼴을 이루며 둥근 쇠를 좌우 양쪽에 꿰어서 손잡이로 삼는다. 특히, 돌화로는 따뜻한 기운을 오래 간직할 뿐더러 그 형태에 공예적인 아름다움이 깃들어서 상류층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러한 화로는 아궁이의 대용은 물론이고 겨울철에는 빼놓을 수 없는 난방구의 하나로, 깊은 겨울밤 할머니를 중심으로 온 가족들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밤과 고구마 등을 구워먹으면서 구수한 옛이야기가 오고 갔던 정겨운 자리로 은근한 삶의 지혜들이 우러나온 지혜의 샘이기도 했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불씨를 무척 소중하게 여겨서 시어머니가 맏며느리에게 살림을 맡길 땐 불씨가 담긴 화로를 넘겨주었으며, 분가할 때는 이사하는 새집에 맏아들이 불씨 화로를 들고 먼저 들어가는 것이 관례였다. 또 상류 가정에서 주인이 아랫목에 앉아 손님을 맞을 때에는 화로를 손님 가까이 놓는 것을 예의로 삼았으며, 서민층에서도 화로를 연장자나 손님 곁으로 밀어주어서 따뜻한 정을 표하였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사를 할 때 연탄불을 꺼뜨리지 않고 이삿짐과 함께 옮겨 가는 것이나, 이사한 집에 성냥이나 양초 따위를 선물하는 정성도 "불씨를 죽이면 집안이 망한다"는 오랜 관념이 남아 있기 때문인 것이다.

이렇듯 우리 전통사회의 가정에서 없어서는 안 될 화로는 자연에 순응하면서 불의 이용과 보존을 물론 우리 정서에 알맞도록 고안해 낸 발명품이었다./윤용현 국립중앙과학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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