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5장 만세 삼창에 술이 석잔<180>

▲ <삽화=류상영>

"오늘 십 개면 사람들이 죄다 영동으로 모이면, 영동이 들썩들썩하겄구먼. 그라고 봉께 오늘이 영동 장날이잖여."
"사 일하고 구 일이 영동장날인데, 오늘이 이십사 일 잉께 장날이지. 장 볼 일이라도 있능개비지?"
"학산 장 볼 일도 읎는 사람이 영동 장은 무슨……"
김춘섭은 쓸쓸하게 웃으며 마을 어귀로 들어섰다. 해룡네가 그릇을 들고 밖으로 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문득 해장 한잔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내 생각을 지워버리고 둥구나무를 바라본다. 순배영감과 변쌍출하고 오 씨가 너럭바위에 앉아 있다.


"오늘 열 시라고 항겨? 열한 시라고 항겨?"
너럭바위에 앉아 있던 오 씨가 일어서며 김춘섭과 박태수가 가까이 오길 기다렸다는 얼굴로 물었다.
"왜유? 밤새 시간이 바뀐규? 내가 알기루는 열 시 까지 둥구나무 밑으로 모이라는 걸로 알고 있는데?"
"난도, 이 자리에 앉아서 구장이 하는 말을 똑똑히 들었는데 병태 저 놈이 자꾸 열한 시라고 우기잖여."
순배영감은 한심하다는 얼굴로 오씨를 바라볼 뿐 말이 없었다. 변쌍출이 곰방대로 오씨를 가리키며 눈을 찡그렸다.
"그람 이따 봐유."
박태수나 김춘섭은 둥구나무거리가 마당이나 다름없었다. 박태수는 지게를 받쳐 놓고 오씨 옆으로 갔다. 김춘섭은 철용이한테 아침을 먹기 전에 당부할 말이 있었다. 순배영감한테 마른 웃음을 지어 보이며 슬슬 걸어갔다.


"아침 다 됐슈."
정지 안에 있던 철용네는 김춘섭이 오는 인기척에 된장이 끓고 있는 투가리를 행주로 싸들고 밖으로 나왔다.
"철용이한테 아침 먹기 전에 및 마디 해 줄 참이었는데 틀렸구먼. 철용이는 워딨댜?"
"밥상 앞에 앉아 있슈."


김춘섭은 헛간 기둥에 지게를 세워 놓고 방으로 들어간다.


방 가운데 있는 밥상 앞에는 철용이를 비롯해 철재 철준이하고 막내인 영숙이가 앉아 있다.


다른 날 같았으면 잠이 덜 깬 얼굴로 눈을 비비며 앉아 있거나 끄덕끄덕 조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김춘섭을 바라보는 눈들이 모두 초롱초롱하다.


"밥 먹자."
김춘섭은 일부러 철용과 시선을 피하며 밥상 앞에 앉았다. 쌀이라고는 제사지낼 때 쓰려고 단지에 비축을 해 둔 쌀 밖에 없다.
그리고 오늘이 누구의 생일날도 아니다. 그런데도 보리와 쌀을 섞어 지은 밥그릇을 보니까 기분이 얹잖다.


철용네도 기분이 맑지는 않다. 서울 가는 철용이를 주려고 특별하게 준비를 한 계란부침이며 멸치볶음, 콩자반이 든 접시를 말없이 철용이 앞으로 옮겨 놓았다.


"형은 서울가믄 맨날 쌀밥만 먹겄네?"
온 가족이 무거운 얼굴로 밥을 먹고 있을 때였다. 둘째 철재가 계란부침을 부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철용에게 물었다.
"가봐야 알지. 안직 서울 귀경도 못한 내가 시방 워티게 알겄어."


철용은 계란 부침을 젓가락으로 잘라서 철재의 밥 위에 올려놓으며 기가 죽은 목소리로 말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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