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새 2009년의 마지막 남은 날들을 손가락으로 꼽으며 송구영신(送舊迎新)을 들먹이는 연말을 맞이하고 있다.

흔히 송구영신하는 마음으로 묵은 한 해를 털어 버리고 새해를 맞이하라고 한다. 올해 못 다한 일들은 마무리하고 잘못된 일들은 반성하며 내년 한 해의 설계를 새롭게 하자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국민들은 연말을 맞고서도 송구영신을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아직 내년도 나랏살림의 예산이 처리되지 않아 무거운 마음으로 국회 쪽을 바라보며 마음을 졸이고 있는 것이다.

내년도 예산을 둘러싼 여당과 야당 간의 갈등과 대립은 연말을 앞두고도 해결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고 있다. 장기적인 대치로 국회의 기능이 마비되었고, 그나마 여당과 야당 의원이 모였다 하면 양보나 설득보다 서로 물리적 방법을 동원하여 문제를 해결하려고만 했다. 오죽하면 tv 개그 프로그램에서 국회의원 역을 맡은 개그맨들이 서로 멱살을 잡고 싸우면 '열심히 일한다'고 칭찬하는 장면이 시청자들의 박수갈채를 받았겠는가.

내년도 예산 중에는 우리 국민들의 실생활과 관련된 사안들도 많다. 국회의원들의 입장에서는 국가적 차원의 법안이 중요하겠지만,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자신과 관련된 상정안들이 조속히 해결되기만 바랄 뿐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말처럼 국가적 프로젝트를 둘러싼 갈등 때문에 나머지 민생 법안들까지 그대로 묶여서는 안 될 것이다.

송구영신이라는 말의 출전은 중국 당나라와 송나라 시대에 걸쳐 살았던 학자이자 시인인 서현(徐鉉)의 「제야(除夜)」라는 시에서 나온 것이다. 「제야」는 7언 율시인데 시의 제2구에 '송구영신'이라는 말이 나온다. "寒燈耿耿漏遲遲, 送舊迎新了不欺 (찬 겨울밤 등불은 깜박이고 시간은 더디 가건만, 옛것은 보내고 새것을 맞이하는 일은 어김이 없구나)". 한 해의 마지막 날 밤 등불을 환히 밝혀 시간이 가는 것을 늦춰보려 하지만, 새해를 맞이해야 할 시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는 뜻이다.

2010년도 예산안 때문에 제야의 날까지 시간이 좀 더디게라도 갔으면 싶지만, 서현의 시 구절처럼 시간은 여차 없이 새해를 맞도록 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헌정 사상 최초로 준예산 집행이라는 사태 속에서 33번의 제야의 종소리를 찜찜한 마음으로 듣게 될지도 모른다.

국회의원들은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나랏살림을 관장하고 봉급을 받는다. 그런 만큼 먼저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국민들의 걱정을 덜어주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국민들이 국회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늘 위태위태하게 마음을 졸이고 있다. 선거 때만 고개를 조아리며 '국민의 뜻'을 받들겠다고 하지 말고, 정말 필요할 때 '국민의 뜻'이 무엇인지 귀라도 기울여 주었으면 한다.

「제야」의 제5구에 "預?歲酒難先飮 (새해 술을 부끄러이 여겨 먼저 마시기 어려워라)"라는 구절이 있다. 서현은 새해를 맞이하는 기쁨보다 지난해를 충실히 보내지 못한 회한이 더 크다는 자기 반성적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지만 국회에서 최선을 다해 내년 예산안을 처리해 준다면, 우리 국민들은 가슴 속에 짓눌려 있던 묵은 것들을 훌훌 털어 버리고 송구영신할 수 있을 것이며, 국회의원들도 새해 첫 술을 기분 좋게 마실 수 있을 것이다.

▲ 송정란건양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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