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5장 만세 삼창에 술이 석잔 184회

▲ <삽화=류상영>

황인술이 인공시대의 치안대장처럼 뒷짐을 지고 연설하는 말투로 이야기를 하다가 말을 끊었다. 해룡이가 때 이르게 잠벵이에 깨끼조끼 차림으로 걸어오는 모습을 보였다. 해죽해죽 웃으며 다가온 해룡이는 둥구나무그늘 밑으로 들어오지 않고 구경꾼처럼 멀찌감치에서 멈췄다. 해룡이를 불러서 가까이 오라고 손짓 한 후에 다시 입을 열었다.


"물론 즘심을 안 주는 거눈 아뉴. 즘심뿐이 아니라 읍내에 있는 영산각에 가서 어르신 들 입만 땡기는 대로 짜장면이믄 짜장! 짬뽕이믄 짬뽕! 우동이믄 우동! 거기서 끝나는 거시 아니고 비싼 탕수육도 대접 할 거유."
"술은 안 주남?"


머리카락에 물을 발라서 가르마를 탄 오 씨가 불쑥 말했다.


"술이 왜 읎겄슈. 술도 디릴팅께 마실 걱정은 난중에 하고 시방은 내 야기 좀 끝까지 들어 봐유. 우리는 시방 저 위에 있는 면장댁의 자제분인 이동하 민의원 후보님 선거운동원으로 가는 거시 아뉴. 왜냐! 이 동리에서 옛날의 국회의원과 같은 급수인 민의원이 나오믄 그거이 죄다 우리 동리의 자랑이고 영광이기 때문이쥬. 하다못해 학산 장날에 가서 탁베기 한잔을 마셔도 모산사람이라고 하믄 짐치 쪼가리가 한 개 더 나와도 나올뀨. 그랑께 선거운동을 하러 간다 생각하지 마시고, 동리를 위해서 큰일을 하러 간다는 맘으로 가야 한다 이거쥬."
"우리가 워칙하믄 되능겨? 운동장에 퍼질러 앉아서 후보들이 연설하는 거 귀경만 하고 있으믄 되남?"


변쌍출이 수염하나 없는 턱을 문지르며 물었다.
"내가 알기루는 이번에 민의원 출마를 하는 사람들이 자유당하고 민주당후보만 있는 기 아니고 무소속도 및 명 나온다고 하는 걸로 알고 있구먼. 그 사람들만 연설을 하는기 아니고, 그 머여. 대통령 선거든 국회의원 선거든 도의원 선거든 그게 머여. 찬조 연설이라는 기 있드라고. 그람 대 여덟 명이 연설을 할 거잖여. 오늘 날도 뜨거운 데 그 많은 사람들이 연설 할 동안 다 듣고 있을라믄 그것도 짝은 일은 아니구먼. 구장이 이 동리사람 들은 무조건 죄다 나가야 한다고 해서 나오기는 했지만, 내 집에서 짐치에 보리밥 한 그릇 물 말아 먹는 거시 났지, 짜장면 한 그릇 읃어 먹을라고 그 먼 영동까지 간다는 거는 좀 그렇잖여."


"아이고, 영감님. 그른 걱정은 개털만큼도 하지 마셔유. 우리 후보님은 자유당이라서 무조건 젤 먼저 연설을 하게 되어 있슈. 순서도 찬조 연설을 하는 사람 야지리 끝난 담에 하는 거시 아녀유. 지가 알고 있기루는 젤 먼저 후보님 찬조연설을 하시는 분이 연설을 하시고, 그 담에 우리 이동하 후보님이 연설을 하게 되어 있슈. 그 두 분이 연설을 하시는 시간은 질어야 한 삼십 분유. 그 연설이 끝난 담에는 궁둥이 털고 일어나서 영산각으로 가믄 됩니다."
순배영감의 말에 황인술은 두 손을 내 저으며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그람, 딴 후보들이 가만히 있을까?"
"그려, 자유당 지지하러 간 사람들이 죄다 궁둥이 털고 일어서믄 운동장에 찬바람만 불낀데."
"날망집 말이 맞아유, 암만해도 자유당한테 박수를 칠 사람들이 칠 할 에서 팔할 은 될낀데. 우리가 싹 빠져 나오믄 판 깨자는 소리하고 다를 기 읎구먼."


상규네가 의문을 품는 말에 아낙네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이왕 연설을 들으러 갔으믄 끝까지 들어 줘야지. 우리편 아니라고 다 일어서믄 그 사람들은 연설 할 맛이 나겄어?"
"그기 문제가 아니고, 연설이라는 거시 일방적으로 한사람 말만 들어서는 알 수가 읎능겨. 이짝 사람 말 들어 봤으믄, 저 짝 가람 말도 들어봐야 어느 쪽 사람 말이 맞는지 알 수가 있능겨."
김춘섭이 붇는 말에 박태수가 토를 달았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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