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발이 거세다. 마른 가지에 홀로 남은 잎새 하나 처연하더니 하얀 눈꽃송이를 품에 앉고 힘없이 떨어진다. 햇살 좋은 어느 봄날, 한 줌의 흙이 되거나 어여쁜 한 떨기 꽃이 되리라.

오렌지족, 시피족, 아티젠족, 엣지족…. 시대마다 유행이라는 게 있다. 특히 소비성향이 강하고 감성적이며 즉흥적인 젊은이들에게 유행은 쇼핑이자 삶이며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오렌지족은 1970~80년대 부모의 부를 바탕으로 서울 강남 일대에서 퇴폐적인 소비문화를 즐기는 젊은이들의 행태를 꼬집는 말이며, 시피(cipie)족은 개성(character), 지성(intelligence), 전문성(professional)의 머리글자를 딴 cip에서 나온 말로 부모의 돈으로 흥청망청하는 오렌지족과는 달리 자신이 벌어서 센스 있는 소비생활을 즐기는 젊은 남자들을 지칭하는 용어다. 댄디족은 주로 방송?광고계?사진작가?컴퓨터 프로그래머처럼 인기가 높은 전문직에 종사하면서 분위기를 찾고 자신을 가꾸는데 인색하지 않으며 나름대로 삶의 질을 높이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또 아티젠(art generation)은 유명디자이너의 예술적 감각이 담겨있는 제품을 선호하는 젊은 세대로 일컫는데 이들에게 예술은 곧 생활이라는 생각과 실천이 담겨있다. 유명 패션디자이너의 하이터치 감각을 통해 생산된 다양한 의류를 입고 즐기며, 시대의 흐름에 맞는 명품 디자인을 즐기고 각종 공연장과 전시관을 드나드는데 인색하지 않다.

지난 한해도 어김없이 세태를 담은 신조어들이 쏟아졌다. 시대상황을 풍자하는 것에서부터 인간의 심리를 묘사하는 기발한 표현들까지 등장했는데 '엣지(edge)있게'라는 신조어와 엣지족의 등장을 주목해야겠다. 멋지고 개성있는 색다른 패션의상을 표현하던 엣지가 드라마 열풍과 함께 널리 퍼지기 시작, 엣지족까지 등장한 것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자기만의 독특한 스타일과 개성미를 추구하려는 인간의 욕구가 표현된 것인데 패션과 디자인, 문화예술 등 삶의 현장 곳곳에서 접속이 가능하다.

그러니, 엣지있게 살려는 사람들에게 차별화된 디자인과 문화향유의 중요성은 말해 무엇하랴. 게다가 상상력과 창조경영을 화두로 하고 있으니 이것을 두고 시대정신이라 하는 게 아닐까.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 사를 니콜은 "새로운 사실의 발견, 전진과 도약, 무지의 정복은 이성이 아니라 상상력과 직관이 하는 일"이라고 했다. 지금 세계는 개개인의 품격에서부터 도시환경과 매일같이 쏟아지는 상품 브랜드에 이르기까지 색다른 멋과 맛, 개성미를 살리려는 노력이 한창이다. 무한경쟁의 우위를 선점하는데 이보다 더 확실한 대안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상상력과 창조경영의 리더는 단연 문화예술계에 있다.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미술관은 미술작품만을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다. 매월 첫째주 토요일에는 <첫째 토요일 축제target first saturday>가 열린다. 음악회, 댄스파티, 다큐멘터리 영화상영, 미술체험 행사 등이 늦은 밤까지 진행돼 어른과 아이들 할 것 없이 어깨를 부딪치며 몸을 흔들고 즐거운 파티의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인근에 있는 뉴욕현대미술관 모마moma는 매주 토?일요일에 열리는 무료 가족프로그램과 여름 음악회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으며 군부대가 있던 섬 거버넌스 아일랜드는 텅 비어 있던 유령의 집을 미술작품을 설치하고 전시하며 조각공원을 조성하고 다채로운 문화예술 이벤트를 펼치면서 새로운 문화아지트로각광받고 있다.

이처럼 세계 곳곳의 박물관 미술관과 문화예술 기관들이 기존의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창조경영과 함께 통섭과 융합의 시대정신을 담으려 애쓰고 있다. 차별화된 전략으로 경쟁우위를 선점하려는 마케팅의 일종이겠지만 엣지있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예술의 영감을 얻고 감동하며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경인년 새 해 가 밝았다. 우리 모두가 엣지있게, 창조경영의 주역이 되면 어떨까.

▲ 변광섭
청주공예비엔날레 총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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