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현 연구관(국립중앙과학관)

흙과 불의 만남 '辰砂(진사)'

고려시대의 청자는 세계도자사상에 몇 가지 특별한 성과를 내었다. 첫째는 비색(翡色)청자의 완성이며, 둘째는 독창적 장식기법인 상감(象嵌)기법이고, 셋째는 전통적 환원염 기술의 결과인 붉은 진사(辰砂)기법으로써 세계도자문화를 질적으로 풍요롭게 하는 데 기여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더 큰 성과는 고려청자의 미(美)가 `인간의 마음을 정서적으로 순화시키는` 예술 본래의 기능에 보다 더 충실했다는 점이다.

그러면 우리 선조들의 가마작업에서의 과학슬기를 살펴보자. 먼저 초벌구이를 하면, 태토의 입자와 입자 사이가 초벌구이 전보다 훨씬 밀착되고 기물이 견고하게 되어 웬만한 충격에 깨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흡수성도 낮아져 유약을 발랐을 때 금이 가거나 부서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또한 재벌구이에서 높은 온도로 굽기 때문에 불 힘에 견디지 못하면 주저앉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이러한 단점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이와 함께 도자기를 가마에 넣고 불을 때어 굽는 조건이 매우 중요한데, 불의 성질에 따라 환원염?산화염?중화염 굽기(燔造)로 구분된다.

도자기의 색을 내어주는 원료는 금속성에 의해 발색되는데, 이것은 유약과 태토의 비율과 굽는 조건에서 산소와의 결합 방법에 따라서도 다양한 색상이 나타나게 된다.

예를 들어 청자와 분청의 경우 환원염으로 구우면 태토 속에 포함된 산화철이 환원되어 밝은 회색을 띠는 비취색의 아름다운 청자가 되지만 산화염의 경우에는 어두운 녹갈색을 띠게 된다. 백자의 경우는 환원염에서 밝은 회백색을 , 산화염에서는 엷은 베이지색을 띠게 된다.

유약에 의한 색의 변화는 동(銅)이 불의 환경에 따라 크게 변화를 일으킨다. 이러한 예는 고려시대의 상감진사기법과 진사기법에서부터 찾아 볼 수 있는데, 산화동(酸化銅)을 안료로 써서 그리거나 채색하고 청자유를 씌운 것으로 붉은 색을 띠기 때문에 진사(辰砂)라고 하며, 산화환경에서는 녹색을, 환원환경에서는 붉은색을 띤다. 초벌구이가 끝난 상태에서 상감된 모란꽃잎이나 국화꽃의 화심(花芯), 용의 눈알 등 문양의 핵심적인 작은 부분에 산화동(酸化銅) 안료로 채색하고 청자유를 씌운 뒤 환원염(還元焰)으로 굽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하면 채색된 부분이 붉은 색을 띠게 된다.

이렇게 흑백색 무늬를 넣은 상감청자에 진사의 붉은색을 첨가하는 방법에는 고려인들의 수준 높은 미의식(美意識)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즉 청자의 바탕색인 엷은 녹색을 띠는 회청색과 상감문양의 흑백색 위에 또 다른 색, 그것도 녹색과 보색(補色)관계에 있는 붉은색 진사를 적재적소에 적은 양으로써 무리 없이 사용하는 절제(節制)의 미의식이 작용하였다는 점이다.

이러한 불의 환경에 의한 유약과 산화동에 의한 붉은색 진사의 발명은 고려가 중국보다 약 2세기 앞서 개발해 낸 새로운 우리 선조들만의 하이테크기술이었다.





윤용현연구관(국립중앙과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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