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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만수의 대하 장편소설 '금강'2부 5장 만세 삼창에 술이 석잔 190회 <버스에서 옥천댁을 곁눈질 하는 박태수>
한만수  |  news@ccdail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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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0.01.13  15: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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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삽화=류상영>

막개에서 올라탄 중절모가 다른 사람들이 들으라는 목소리로 투덜거리며 담배연기를 내뿜는다. 박태수는 중절모가 손가락 깊숙이 꽂고 있는 담배를 본다.


올해 새로 나온 아리랑이라는 담배를 피우고 있다. 중절모는 괜히 턱을 좌우로 흔들며 담배를 든 손을 어깨위로 치켜든다. 그 얼굴에는 '나는 지금 아리랑을 피우고 있는 중이란 말여!' 라는 글씨가 써져 있는 것 같았다.


박태수는 갑자기 50환짜리 파랑새가 맛이 없었다. 바닥에 버려서 비벼 끄다보니까 검정고무신을 신고 나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고 보니 옷차림도 읍내에 나가는 옷차림이 아니다. 읍내에 볼일을 보러 나간다면 적어도 흰 고무신에 깨끗하게 빨래를 하고 다듬이질 한 옷을 입었을 것이다. 자신만 그런 것이 아니고 모산에 사는 남정네들 모두가 읍내에 나갈 때는 어느 정도 옷차림에 신경을 쓴다.
"이른 차림으로 읍내를 간다고 항께 주책없는 놈이라고 속으로 웃었을 꺼잖여."


짝사랑하는 소녀가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르고 오줌을 누다가 들켰을 때 기분이 그러할까. 순식간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서 고무신을 쳐다보다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옥천댁의 뒷모습이 안타깝게 다가온다. 비녀를 얌전하게 꽂은 머리카락에는 동백기름을 발랐는지 검게 윤이 난다. 소나기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격정의 파도를 헤엄쳐갔던 둥글고 작은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옥색저고리의 하얀 동정위로 가늘게 뻗은 목은 눈이 부시도록 부시다.
"내가 시방 왜 이르는가 모르겄구먼. 이르믄 안되는 건데……."


버스 안에는 승객들이 많지가 않았다. 승객들은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거나 유리창으로 반사되는 4월의 따뜻한 햇볕에 끄덕끄덕 졸고 있었다. 아리랑 담배를 자랑하던 중절모도 횃대에 앉아있는 수탁처럼 졸고 있다. 그런데도 박태수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서 고개를 푹 숙이고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애를 썼다. 그러는 사이에 버스는 영동읍내로 들어섰다.
"벌써 다 옹겨?"


박태수는 마차다리 밖으로 펼쳐지는 영동천의 물을 바라본다. 물은 햇볕에 반짝이며 정지해있는 것처럼 흐르고 있는 데 시간은 급류처럼 소용돌이치며 흘러가는 것 같았다.


버스가 정류장으로 가기 전에 정류소 앞에서 멈췄다. 면직원이 졸고 있다가 일어서서 옥천댁에게 인사를 했다. 옥천댁도 일어서서 면직원에게 인사를 했다. 자리에 앉으면서박태수를 바라본다.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던 박태수가 고개를 돌리면서 시선이 마주쳤다. 무의식중에 가볍게 고개를 숙여보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박태수는 당혹스러운지 얼굴이 금방 시뻘겋게 달아올라서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으로 엉거주춤 일어선다.


버스는 영동을 경유해서 대전까지 가는 버스다. 옥천댁은 박태수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면서도 일어나지 않았다. 박태수의 걸음이 옆에 와서 멈추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옆으로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지는 여기서 내려야겄슈."
"그……그렇구만유……"


옥천댁은 박태수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할 때서야 일어섰다. 순간 버스가 가볍게 몸을 떨었다. 잔뜩 긴장하고 있던 옥천댁은 자신도 모르게 박태수의 어깨를 의지하며 자세를 바로 잡았다. 어깨를 잡던 손을 얼른 뗐지만 다리가 후들거려서 인사를 하는둥 마는 둥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람, 댕겨 오셔유."


박태수는 시간만 허락된다면 대전까지라도 버스에 앉아 있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세상에서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상규네의 손가락과 감히 비교도 할 수 없는 옥천댁의 가늘고 긴 손가락이 찰나적으로 머물고 간 어깨에 찍힌 화인을 간직하며 그냥 내릴 수밖에 없었다.
"벼……별일여, 저 이는 저 이 일뿐인데 내 가슴이 왜 이릏게 뛰는지 모르겄구먼."<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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