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부 6장 화려한 상봉 193회 <중국집에 앉아 있는 경훈>

▲ <삽화=류상영>

"오늘도 많이 팔았지? 내가 볼 때 이 동리서 제일 많이 파는 거 같더군."


삼십 대 중반의 백씨가 주방에서 짬뽕국물을 만들면서 말했다.


"장사는 그럭저럭 되는 편이유. 딴 거는 몰라도 쌀장사는 안 될 수가 없잖유. 죄다 먹고 살라고 하는 짓인데."


"이 동네에 쌀가게가 다섯 개나 되잖아. 이런 말 하면 경훈이한테 욕 얻어먹을 말이 되겠지만 난 형제상회가 문을 열 때 장사 안 될 줄 알았지. 헌데 들어 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고 시방은 제일 잘 되는 거 같더군. 젊은 사람들이 수완이 보통이 아녀."


백씨는 대충 끓인 짬뽕 국물하고 맥주컵 가득 따른 소주를 경훈 앞에 내려놓았다.


"난도 놀랬슈. 우리 형이 저릏게 장사를 잘하는 줄 알았다믄 진작 장사를 시작할 걸 그랬슈. 및 년만 빨리 했어도 시방 쯤 서울서 자리를 잡아다 및 번은 잡았을 거유."


벌써 3개월 전이라 서상철에 대한 기사가 나올 턱이 없었다. 경훈은 감쪽같이 복수를 하고 덤으로 돈까지 백오십만 환 돈을 벌었다는 생각이 다시 들면서 기분이 짜릿했다. 소주를 단숨에 반 컵 정도 마셔 버리고 짬뽕 국물을 먹었다.


"총각 오늘 장사 끝났어?"


나무로 만든 배달통을 든 백씨 아내가 홀 안으로 들어오며 경훈에게 말을 걸었다.


"배달은 끝났지만 장사는 안 끝났슈.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들은 늦게까지 오거든유."


"그렇게 돈만 벌다 장가는 언제 가? 내가 볼 때 경훈이 총각은 좀 기다려도 되지만 형은 장가 갈 아니가 된 거 같던데."


"우리 형은 안직 나이가 짝아유. 인제 제우 스무 살 인대유 뭐."


"스무 살이면 작은 나이는 아니고 결혼을 해도 좋은 나이네. 안 그래요, 여보?"


"그렇기는 하지. 왜? 어디 좋은 색시감이라도 있나? 있으면 소개를 해 줘. 총각 둘이서 밥 해 먹는 것 보다는 여자가 해 주는 밥이 훨씬 났지. 경훈이 생각은 어때?"


"글씨유. 저는 좋지만, 형이 워티게 생각할 지 모르겠네유."


"그럼 한번 물어 봐. 성냥공장에 다니는 아가씬데 그 아가씨 고향도 충청도래. 진천인가 어디 산다고 하든데, 객지에서 같은 충청도 사람끼리 만나서 살면 좋잖아."


"진천이라믄 충북이네유. 그 아가씨는 및 살이나 먹었는대유?"


"그 아가씨도 스무 살여. 그러고 보니 동갑이네. 동갑은 선도 안보고 결혼한다고 하잖아."


"글씨유……"


경훈은 남은 술을 마저 마셔 버리고 거리를 바라본다. 어두워졌는데도 행인들이 많이 다닌다.

낡은 옷차림이나 지쳐 있는 얼굴 표정들로 봐서 일터에서 돌아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도 통행금지가 되면 쫒기는 물고기들이 풀숲으로 숨어버렸을 때처럼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통금이 되고 인적하나 없는 빈 거리를 볼 때마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넓기는 넓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넓은 서울에서 성공을 하려면 무엇보다 강철처럼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피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여기 있을 줄 알았구먼. 빨리 와 시방 아부지하고 어머 오셨단 말여."


"그 봐, 내가 아까 머라고 했어. 아부지는 질 찾는데 귀신이라고 했잖여."


경훈은 식당 안으로 고개만 내 밀고 손짓하는 시훈을 보고 일어섰다. 취기가 후끈하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십 환짜리 한잔을 꺼내서 백씨 아내에게 줬다. 시훈이 출옥을 하기 전만 해도 십 환으로 하루를 살았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틀리다. 십 환 이 아니라 백 환 정도도 부담 없이 쓸 수 있는 돈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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