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여행에 대한 추억

대학 3학년 겨울방학이었던가? 나는 우연히 국비지원으로 가는 학생 해외연수 기회를 얻게 되었다. 영국과 독일과 러시아를 방문하면서 지금으로 이야기 하면 글로벌 역량강화를 위한 다양한 세계문화 체험을 하게 되는 그런 종류의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다. 지금처럼 해외여행의 기회가 누구에게나 잘 주어지지 않았던 그 당시만 해도 나는 새로운 세계와 낯선 문화를 경험하게 된다는 짜릿함으로 오랜 시간동안 콩닥거림으로 밤마다 눈을 감았던 기억이 새롭다.

첫 여행에 대한 추억

누구나 첫 여행에 대한여러 가지 추억들이 서려있듯이 나 역시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독일에 들어섰을 때의 일이다. 무너진지 얼마 안 되는 베를린 장벽을 보며 우리 일행들은 분단과 통일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고, 또 한국의 남북에 대한 미래를 고민하고 있었을 즈음 누군가가 나에게 속삭여 주었다. 독일의 500마르크와 우리나라 500원 동전의 크기가 같기에 유용하게 쓸수있다고... 그 당시 독일과 우리나라 화폐비율이 5:1 정도 되었으니 적은 금액은 아니였다.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국제전화가 가능한 공중전화로 달려갔다. 공중전화로 한국에 있는 집으로 전화를 할 때 나는 안 되는 줄 알면서 호기심으로 가져간 500원짜리 동전을 사용하고 말았다. 정말이었다. 500원짜리 동전이 그렇게 쓰이고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전화기 저 편으로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것도 신기하였다.

그런데이상한 건 그렇게 범죄를 저지르고 난 이후부터 내 가슴 한 구석은 찜찜함으로 스멀스멀 물들어 가고 있었다. 솔직히 그다지 도덕적이지도, 솔선수범하는 모범생도 아니기에 내가 그런 죄의식을 느끼는 것이 더욱 낯설기까지 하였다. 그래서 가끔 500원 동전을 보고 있노라면 그 때의 기억이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가슴의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곤 한다.

나만의 동전

오늘은 문득 내 책상 유리판 아래에 있는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1달러짜리 동전을 보고 있으려니 재미있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어느 나라에서 만든 동전이든 지폐든 한쪽 면은 화폐의 가치를 나타내는 숫자로, 다른 한쪽은 상징적인 무언가의 그림으로 나타내고 있다. 숫자로 나타내는 그 가치가 곧 동전의 가치이며, 다른 한 쪽에 품고 있는 그 위대한 상징이 곧 세상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혹은 눈에서 눈으로 넓어지는 만큼의 존경받는 가치가 아닐까 싶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존중받을 수 있는 부분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새해가 시작된지 꽤 여러 날이 되었다. 새해에는 나에게도 한 쪽은 나를 그리고 다른 한 쪽은 나의 가치를 적을 수 있는 나만의 동전을 만들어 보리라. 내 얼굴을 그린 또 다른 뒷면에는 과연 어떤 숫자를 넣게 될지 고민을 하면서 올 한 해를 보내보리라.

▲ 김미혜 충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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