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부 6장 화려한 상봉 195회 <시훈 형제와 장기팔 부부>

▲ <삽화=류상영>

그렇게 마음속에서나 꿈에서 불길한 모습으로만 서성거리고 있던 형제가 번듯하게 가게를. 그것도 사람의 목숨을 지탱해주는 쌀가게를 하고 있다는 점이 현실로 와 닿지 않았다. 눈을 껌벅거리니까 참았던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슬쩍 고개를 돌려서 헛기침을 하며 눈물을 닦는데 어느 사이에 입안으로 들어간 눈물이 짠 걸 보니 꿈은 아니었다.


"그려, 인자 한숨 돌렸응께 그 동안 워치게 지냈는지 야기 좀 해 봐라. 시훈아 대관절 먼 일이 있었길래, 그 동안 그 흔한 편지 한 장 읎었던겨? 이 에미는 미치는 줄 알았잖여. 지난 슬 때는 니덜이 오믄 싸 줄라고 떡가래를 서 되나 뽑았잖여. 그걸 슬만 쇠고 나서 여즉까지 한 그릇도 안 끓여 먹고 바짝 말려서 벽장에 넣어 두었잖여. 그걸 볼 때 마다 니덜 생각이 나서……"


날망집은 그 때를 생가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는 얼굴로 눈물을 찍어낸다.


"허허, 보채기는. 가만히 지달려도 때가 되믄 야들이 어련히 알아서 말을 할까."


장기팔은 날망집보다 자식들의 그동안 행적이 더 궁금했다. 궁금하지 못해 오금이 저릴 지경이다. 그러나 미록 장터 마당에서 염색으로 끼니를 이어갈망정 체통을 지켜야 할 가장이다. 점잖게 날망집을 꾸짖으며 손가락 끝으로 무릎을 툭툭 친다.


"우신 즈녁부텀 드신 후에 찬찬히 말씀을 드릴께유. 서울 오신다고 즘심도 변변치 않게 드시고 올라 오셨을낀데, 벌써 아홉시나 됐잖유."
"즈녁은 옆집에다 주문을 해 놨구먼. 탕수육하고 짜장을 시켜 놨응께 쪼끔 있다 갖고 올껴."


"그 비싼 짜장면에 탕수육이라니 우리가 시방 그런 걸 사 먹을 팔자가 되냐. 그라지 말고 어머가 금방 쌀밥을 할팅께 쪼끄만 지달려라. 내가 니덜 줄라고 집에서 밑반찬도 해 오고, 경훈이 좋아하는 딩기장도 갖고 왔다."


날망집이 내가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얼굴로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어머, 우리두 돈 잘 벌어유. 그랑께 냘 아침에는 어머가 해 주는 밥 먹기로 하고 시방은 가만히 앉아서 지달려유."


"그랴, 어디 오랜만에 자식들한테 대접 좀 받아 보자."


장기팔이 점잖게 날망집의 손을 끌어 당겼다. 날망집은 못이기는 척 주저앉아서 아무리 보아도 기특해서 견딜 수 없다는 얼굴로 경훈의 어깨를 자꾸 쓰다듬는다. 기팔은 어디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말을 해 보라는 표정으로 형제를 바라보았다. 시훈과 경훈은 장기팔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서로 눈치만 살필 뿐 얼른 입을 열지 않았다.


"크음!"


기다리다 애가 타기 시작한 장기팔이 슬슬 이야기를 해 보라는 표정으로 잔기침을 했다.


"형이 말씀 드려."


"아녀, 니가 야기 해 봐라."


시훈은 거짓말을 하려고 하니까 갑자기 입술이 마르는 것 같았다. 혀로 입술을 적시며 경훈의 옆구리를 툭 쳤다.


"우선, 작년 추석하고 올 슬에 집에 내려가지 못한 걸 죄송하게 생각해유. 하지만 쌀장사를 하기 전에 하든 장사가 명절 때만 됐다 하믄 대목이라 도저히 쉴 수가 읎었슈. 그래서 지덜을 지달리고 계실 부모님을 생각하믄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지만 참을 수 벢에 읎었슈. 일단은 성공을 한 다음에 찾아봬도 늦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쥬."


경훈은 취기의 힘을 빌려서 미리 생각해 두었던 거짓말을 더듬거리지도 않고 술술 말했다.


"그려, 원래 장사라는 거시 대목 장사가 일 년의 반이라는 말이 있지. 난도 명절 대목이 되믄 보통 때 보다 대 여섯 배 염색을 하잖여. 그 때는 니덜 어미까지 나와서 거들어도 바쁘드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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