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싹의 희망 준비

제천에서 청풍으로 가다보면 청풍호반을 끼고 도는 구불구불한 길에 아름드리 벚나무 가로수가 나그네를 안내하고 있다.

이른 아침, 호수에는 안개가 피어오르고 나뭇가지마다 반짝이는 안개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마치 천상의세계를 유영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드라이브를 나선다.

헐벗고 메마른 몸에 앙상한 가지를 흔들며 떨고 있던 나무가 요즘은 아침마다 양털 옷으로 갈아입고 포근한 아침을 맞고 있다.

짧은 햇살이지만 그 빛을 받아 더욱 영롱하게 반짝이는 은빛 조각들의 속삭임. 벚꽃을 피워 봄에만 사랑을 받는 줄 알았던 길가에 줄지어선 가로수 들이 황량한 이 겨울에도 지나는 이들을 반갑게 반겨 맞아주고 있다.

이제 해가 중천에 떠오르면 꽃들은 모두 사그라져 나무의 몸을 타고 가슴으로 흘러들어 내면 깊숙이 동면에 들어가 있는 뿌리를 자극하며 새싹의 희망을 준비할 것이다.

새싹의 희망 준비

나무는 또 나이테 하나를 만들고 더 성숙해지기 위해 겨울에도 꽃을 피우며 인고의 세월을 견디고 있다.

유년시절에는 겨울이 더 길고 더 추웠던 것 같다. 시골 온돌방은 모두 나무를 땔감으로 써서 겨울엔 썩은 나무를 주우러 다니는 일이 많았다. 야산을 헤매며 나무등걸, 고주박 등을 지게에 가득지고 내려와 장작을 쪼개다 보면 하얗게 드러나는 나무의 속살에 박힌 나이테를 보며 또 하루 등 따습게 잘 수 있다는 안도감에 행복을 느끼기도 했다.

저녁 어스름 무렵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서서히 온돌이 달아올라 아랫목은 손을 대지 못할 정도로 절절 끓고 윗목은 얼음이 얼 만큼 위풍이 심하던 소죽을 쑤던 방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고구마를 구워먹으며 라디오 연속극을 듣던 그 포근함이란.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잠을 자다가 구들이 서서히 식어 한기가 엄습해 오는 새벽녘에는 귀찮음을 무릅쓰고 또 한 아름의 장작을 아궁이에 집어넣고 들어와야 따뜻한 늦잠을 잘 수가 있었던 시절, 겨울나무는 우리에게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참 많은 것을 주었다.

처마 끝 양지바른 곳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장작이 서서히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 겨울이 가고 있다는 것을 아쉬워하며 곧 봄이 다가올 것이라는 짐작에 느릿느릿 오는 계절이 바뀌는 그 속도감이 농촌의 평온을 지탱해주기에 충분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

생활에 바쁘다보니 이제 이런 것들은 모두 잊고 편리함만 추구하는 현실에 감정을 불러 일으킬만한 감동도 만끽하지 못한 채 그냥 덤덤히 지나쳐버리는 일들이 얼마나 많던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세상에 쫓기는 심정은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가끔은 이런 여유를 갖고 싶다. 온갖 욕심과 욕구로 가득 찬 마음 한 구석을 조금만 비워놓고 이런 풍경들을 한 폭 앨범 속에 장작을 쌓듯 차곡차곡 채워 간직해 둔다면 훗날 마음 허허로울 때 들춰보는 기쁨 또한 괜찮을 것 같다.

지난날 화려했던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벗어놓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서도 당당하게 겨울을 맞이하는 저 나무들처럼 우리사회에도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여 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의 발로인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정신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오직 홀로 인고의 세월을 견디며 희망을 키우는 겨울나무처럼 내면에 나이테하나를 또 돌리며 새날의 문을 활짝 연다.

▲ 한인석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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