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6장 화려한 상봉 200회 <술을 마시는 장기팔>

▲ <삽화=류상영>

장기팔은 독한 고량주를 입안에 단숨에 털어 넣었다. 40도짜리 고량주가 식도로 내려가면서 짜르르 한 감촉이 일어난다. 잔뜩 인상을 쓰면서도 쪽쪽 소리가 나도록 잔을 빨았다.


"아부지, 그기 그 술이나 마찬가지유. 어채피 빼갈은 사십 도가 되야 내다 팔아먹을 수가 있는 벱유."


"아부지 기분이 좋으싱께 술 맛도 더 나시나벼."


시훈에 이어서 경훈이 싱긋이 웃으며 빈 잔에 다시 고량주를 채워 주었다.


"그려, 그런가 보다. 솔직히 시방은 대통령도 안 부럽다. 자식들 이릏게 건강하게 살아 있는 것만 해도 고마울 지경인데 번듯하게 가게까지 차리고 있응께 내가 머가 부럽겠냐."


장기팔은 고량주를 연거푸 몇 잔 마셨더니 얼굴이 홍시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정신없이 취기가 오르는 것을 느끼면서도 너무 기분이 좋아서 합죽합죽 웃었다.


운동장에는 8월의 햇볕이 따갑게 내려앉고 있었다.


전교생은 땅바닥에 퍼질러 앉아 있다. 교단에서는 연사들이 주먹을 흔들어 가면서 웅변을 하고 있다. 선생들은 울타리 앞에 서 있는 느티나무 그늘 밑으로 몰려가서 멀리 교단을 지켜보고 있다. 한가하게 잡담을 하다 길게 담배를 피우다 길게 하품을 하기도 하면서 권태로운 시선으로 교단을 지켜본다.


바람이 불면 산더미만한 흙먼지가 뿌옇게 달려가서 운동장에 앉아 있는 학생들을 덮쳤다. 그러면 아이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이거나 바람 부는 반대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머리며 어깨에 뿌옇게 내려앉은 흙먼지를 털 생각도 안하고 끄덕끄덕 졸다가, 여러분 이 연사가 힘껏 외칩니다! 라고 고함을 지르면 번쩍 눈을 떴다가 이내 끄덕끄덕 존다.


6학년 학생을 마지막으로 웅변대회는 끝이 났다.


진규는 머리로 떨어지는 햇살이 따갑다는 것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것 보다는 과연 내가 과연 몇 등이나 할까 하는 조바심에 입안의 침이 마를 뿐이다. 지금까지 지켜 본 바에 의하면 4학년 두 명은 모두 원고를 한두 번씩 까먹었다.

육 학년은 세 명이나 나왔는데 목청이 터져라 외친 것 같지가 않았다. 같은 동네에 살고 있지만 학산에서 학교를 다니는승철이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승철이는 이번 '광복절 기념 웅변대회'를 앞두고 고등학교에 다니는 웅변선수한테 과외 지도를 받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3학년인데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자신만큼은 못한 것 같았다.


"오 학년 박진규가 일 등 인 거 가텨."


"나도 그릏게 생각햐. 박진규는 중학생들보다 잘 하드라."


"야! 넌 부끄러운 줄 알아. 워치게 육 학년짜리가 오학 년 보담 못하냐."


진규는 다른 아이들이 속삭이는 말들에 가슴이 타는 것을 느끼며 느티나무 그늘을 바라본다. 선생들 몇몇이 머리를 맞대고 심사를 하는 모습이 보인다.


"오늘은 틀림읎이 오학년 박진규가 일등일겨."


"너도 그릏게 생각하냐? 내 생각에도 박진규가 일등 할 거 가텨."


진규는 육 학년 반에서 주고받는 말들에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지난 6월에 있었던 '6·25 기념 웅변대회'에서는 2등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1등을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가슴이 울렁거렸다.


"오늘은 내가 틀림없이 일 등일껴."


"웃끼지마 오 학년 박진규가 너 보다 더 잘했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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