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부 6장 화려한 상봉 201회 <웅변을 하는 진규>

▲ <삽화=류상영>

"나도 잘했어. 틀린데 한 군데도 읎이 끝까지 잘했단 말여. 그랑께 내가 일 등이지."


진규는 3학년 쪽에서 떠드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승철의 모습은 금방 눈에 띄었다. 고의적삼이나 러닝셔츠 차림의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상고머리를 하고 흰색 바탕에 파란색 체크무늬 반팔셔츠가 돋보였다. 4학년이나 5학년 상급생들이 듣던 말든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승철이 가소롭게 보였으나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그 보다는 오늘은 1등 상을 타게 될지도 모른다는 설렘이 너무 진했기 때문이다.


느티나무 그늘 밑에 있던 선생들이 일제히 햇볕이 내려쬐는 운동장 안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삼 학년한테 일등을 주면 사오륙 학년 학생들이 가만 있겄슈? 불평을 많이 하믄 워틱합니까?"


"허어! 교감선생은 쓸대읎는 걱정을 왜 그리 많이 하는 거유? 사친회비도 지대로 안내는 촌것들이 불평을 하믄 을매나 하겄슈. 아까 말 한 것츠름 내가 적당히 말 할팅께 교감선생은 기냥 발표만 하믄 됩니다."


교장 손문규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교감의 말을 무시해 버리고 교단을 향해 걸었다.


"교감선생님 괜한 걱정하지 마시고 교장선생님한테 맡겨 두시는 것이 좋을 거 가튜. 그라고 솔직히 삼 학년짜리가 선배들 보는 앞에서 당돌하게 웅변을 할 수 있는 용기도 높이 사야 한다고 생각해유. 오늘은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점이 있기는 하지만 자신감을 불어 넣어서 앞으로 훌륭한 웅변선수가 되게 하는 것도 스승들의 역할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남유?"


"좌우지간 난 김 선생 말대로 승철이 한티 좋은 점수 준 죄벢에 읎응께 무슨 일이 생기믄 김 선생이 다 책음져."


교감은 승철의 담임을 노려보고 나서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교단 옆에 섰다.


"에! 시방부터 광복절 기념 웅변대회 시상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우신, 심사 기준을 말하자믄, 웅변이라는 거시 원래 언변술이나 마찬가지라 이거유. 말을 잘할라믄 워티게 해야 합니까? 이 교감선생의 생각은 조리 있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러 사람 앞에서 절대루 떨거나 기가 죽어서는 안 된다는 거쥬. 그래서 오늘 심사 기준은 여러 사람 앞에서 떨지도 않고 기도 안 죽고 용감하게 운동을 한 학생한티 젤 좋은 점수를 줬다는 걸 여러분들도 알았으믄 합니다. 그 담으로 중요한 것은 웅변 원고의 내용, 마지막으로 웅변의 기술이 얼매나 좋으냐 나쁘냐 는 점을 점수로 매겼다는 점. 이 세 가지 중에 첫 번째 것을 오십 점 만점, 두 번 째 것을 삼십 점 만점, 마지막 웅변의 기술을 이십 점 만점. 이릏게 총 백 점 만점을 기준으로 하여, 여러 선생님이 심사를 한 결과를 시방부터 발표하겠습니다. 에……"


진규는 교감이 말하는 심사기준이 얼른 와 닿지 않았다. 웅변을 잘하려면 먼저 원고가 좋아야 하고, 그 다음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원고내용을 전달하는 가에 있는 걸로 배웠기 때문이다. 용감하고 떨지 않는 기준도 어디에 있는지 너무 궁금해서 담임한테 뛰어가서 물어 보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미 심사가 끝난 상황이어서 결과를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용감하다는 말이 먼 말여? 빈 집 지키는 강아지츠름 빽빽 소리만 지르믄 일등을 준다는 말인가?"


"내가 듣기에도 그런 뜻 가텨."


"거기 뉘여. 김영식하고 옆에 있는 놈 조용안하믄 변소 청소 시킬겨."


육학년 담임이 교장의 심사기준에 불만을 품는 학생들에게 주의를 줬다.


"에! 삼등부터 발표를 하겄슈. 내가 이름을 부르는 학생은 큰 소리로 대답을 하고 요 앞의 교단 앞으로 뛰어 나오도록. 삼 등에는 오학 년 박진규!"


진규는 교장이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억울하게 1등을 육 학년한테 양보를 한다면 적어도 지난번처럼 2등이라고 해야 된다. 2등을 했던 지난 번 보다 훨씬 잘했는데 3등 을 준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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