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어난 경관 간직한 '단양팔경'

▲ 단양'도담삼봉'
충북 단양(丹陽)이란 지명은 연단조양(鍊丹調陽)에서 유래된 말로 '신선이 다스리는 빛 좋은 고을'이라는 얘기. 때문에 소백산 자락과 남한강이 만나는 곳으로 선경처럼 느껴지는 까닭이다.
단양팔경(丹陽八景)을 포함해 자연경관이 빼어나다. 고즈넉한 산촌풍경에 마음을 잠시 빼앗기는 사이, 이곳이 정녕 옛 시인 묵객들이 절경을 예찬했던 고장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편집자 주


'팔경(八景)'이 난무하는 시대다. 아무 곳에나 팔경이란 단어를 내주고 싶지는 않다. 단양팔경(丹陽八景)은 도담삼봉과 석문, 사인암, 하선암, 중선암, 상선암, 옥순봉, 구담봉 등을 일컫는다.
하나하나가 보석같이 아름답지만 한데 모았을 때 더욱 강렬한 빛을 발하는 존재에만 부여함이 합당하다. 단양팔경은 단양읍에서 3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곳에 흩어져 있는 진정한 비경이다.
이곳은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과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1745∼?) 등 선인들의 애정과 경탄을 끌어냈던 곳이다. 특이하게도 단양을 대표하는 팔경은 충주호를 끼고 있다.
겨울철 잔설이 남아있는 단양팔경을 호젓이 돌아보는 맛은 선인들과 얘기를 나누는 착각을 부른다. 자연의 용틀임이 눈 앞에 펼쳐지는 이 일대 여행은 정중동을 깨닫게 하는 오감여행이다.
강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기다려도 뱃사공은 나타나지 않는다. 강바닥이 강추위에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잠자코 도담삼봉(島潭三峰)을 응시하니 운치가 느껴지는 것이 그다지 나쁘지 않다.
장군봉을 중심으로 처봉과 첩봉이 나란히 서 있다. 첩과 놀아나는 남편을 시샘하는 처봉이 멀찍이 떨어져 반대편으로 돌아앉아 있고, 첩봉은 아양을 떨며 주인에게 찰싹 붙어있는 것 같다.
석문(石門) 쪽으로 향했다. 바위산 중간에 아치처럼 걸쳐 있는 것이 경탄을 내뱉게 한다. 앙상한 가지로 아랫부분을 치장했지만 위쪽은 맨몸을 드러내서 매끈한 곡선이 더욱 선연해 보인다.
명종 초 단양군수를 지냈던 퇴계 이황은 도담삼봉의 정취에 반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권세 싸움에서 벗어나 한직을 맡고자 내려와 있던 그는 단양만의 매력에 푹 빠져 시흥을 즐겼다.
▲ 단양'사인암'
삼도정을 자세히 관찰하니 호방하게 풍류를 즐기기에 딱 좋은 곳이란 생각이 든다. 느릿느릿 흐르는 강물과 바위틈에 피고 지는 무명초를 벗 삼아 술잔을 기울인다면 극락이 따로 있을까.
병풍을 강 주위로 늘어놓은 듯 솟은 봉우리들은 나는 듯 뛰는 듯 솟아오르는 듯 참으로 수려하다. 연꽃을 꽂아 놓은 듯 백옥을 묶어 놓은 듯 기기묘묘한 변화는 눈과 마음을 도취시킨다.
월악산에서 내려오는 벽계수는 신선들의 물놀이에 쓰일 만큼 청담하다. 계곡 중간마다 신선들의 바위라는 선암(仙岩)이 3곳에 있다. 계곡이 속세를 떠나 신선이 노닐 만큼 곱고 훌륭하다.
구불구불한 도로를 거슬러 올라, 가장 상류에 위치한 상선암(上仙岩). 계곡에 웅장하다는 표현이 어울리지는 않겠지만, 상선암의 계수는 여름철이면 무서울 정도로 빠르고 거세게 움직인다.
탁족은 못하고 멀리서 그저 쳐다봐도 바닥이 보일 만큼 수질은 깨끗하지만, 빛깔은 투명하지 않고 초록색을 띤다. 거대한 바위가 토해내는 물을 대하게되면 가슴이 청량해지는 느낌이다.
중선암(中仙岩)은 상선암에서 그리 멀지 않다. 물살이 한결 부드럽고 깊이도 얕다. 그렇지만 계곡 물이 돌과 부딪쳐 튀어 오르면 세상 구경나온 물고기가 솟구치는 듯한 생명력이 감지된다.
하선암(下仙岩)은 또 어떠한가. 흰 바위가 마당을 이루고 그 위에 둥글고 커다란 바위가 앉아 있는 형상이 마치 미륵 같다는 곳이다. 물의 흐름은 더욱 온순하고 자갈이나 돌멩이도 많다.
구담봉(龜潭峰)은 기암절벽이 거북을 닮아 구봉이며, 물속에 비친 바위가 거북무늬를 띠고 있어 구담이라 이름 붙여졌다. 조선 인종 때 백의재상 이지번이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은거했다.
구담봉에 얽힌 얘기가 없겠는가. 푸른 소를 타고 강산을 청유하며 칡넝쿨을 구담의 양안에 매고 비학을 만들어 타고 왕래하니 사람들이 이를 보고 신선이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옥순봉(玉荀峰)은 희고 푸른 바위들이 대나무 순 모양으로 힘차게 우뚝 치솟아 절개있는 선비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신비한 형상의 봉우리다. 소금강이라는 별칭을 가질 정도의 비경이다.
사인암(舍人巖)은 단원 김홍도가 열흘이나 머물면서 아름다운 절경을 어떻게 담아야 할지 고민을 했다고 한다. 사인암 앞 계곡 바위에 새겨진 바둑판과 장기판은 수 백년도 더 된 것이다.
이 바위는 마치 신선들이 계곡에서 놀기 위해 쳐놓은 병풍처럼 깎아지른 암벽이 세로로 면을 이루며 쭉쭉 뻗어있다. 물소리를 벗 삼아 바둑과 장기를 두는 신선놀음, 바로 그것이지 싶다.
'한 손에 막대를 잡고, 또 한 손에는 가시를 쥐고/늙는 길을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을 막대로 치려했더니'라는 역동(易東) 우탁(禹倬.1263∼1343)의 탄로가(嘆老歌)는 발상이 참 재미있다.
고려 말 유학자 역동 우탁이 사인(정4품) 벼슬에 있을 때 이곳에서 청유했다는 유래에 따라 조선 성종 때 단양군수 임제광이 사인암이라 명명했는데 역동 선생의 숨결이 살아있는 듯 하다.
/단양=방병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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