쏠림 현상

불덩이 되도록 품던 생명 /대(代)잇는 비밀 가르치려 /좁은 세상 택한 걸까/씨앗 봉지 곁에 살찬바람 쌓일 때 /두꺼운 침묵 깨어 고인 흙냄새 /'금돈,은돈 열냥' 자손 키울 꿈으로 /산 아래 비탈 밭정월 눈을 녹인다./필자의 시 '고추 씨'전문이다.

새해들어 세간에 가장 많이 난타당한 낱말은 모르면 몰라도아직 낯설기만한 '세종시'다. 그에 따른 여론조사로 덩달아예고없는 전화설문에 숱하게 시달려야 했다. 연령을 먼저 묻고 그다음 성별 차례다. 조사기관에 따라서는실제 나이를 대자마자 '해당없습니다'라며 대상에서 조차 제외시켜 머쓱한 진동까지 일었다.자고나면 엎치락 뒤치락 여론의 향방이 궁금한게 참으로 여러 가지다 안개 자욱한 공간처럼.

쏠림 현상

오차 범위와 신뢰수준을 자세히 밝히는 걸 보면 통계의 정확성에 대해 왈가왈부할 입장이 아니나 같은 날 동일 내용으로 실시된 응답결과가 야릇한 편차를 보여 가끔은 판단조차 무척 헷갈리게 만든다. 우리 네 보통 사람들에겐 쏠림현상이 짙다. 메뉴를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음식점을 들면 똑 부러지게 자기 입맛에 맞는 걸 먹기가 어렵다. 대개의 경우 처음 시킨 한 둘의 구미를 따라 통일하기 일쑤다. 그것이 바로 습관처럼 여러 대 내려온 우리네 묵은지 이력 아니던가. 물론, 설문을 의뢰한 쪽이나 조사한 쪽 모두성향분석과 판도예상 등에 전문성을 쏟겠지만, 여론몰이식 응답은 자칫 논란과 갈등의 상처로 남을 수 있다. 최근 인터넷을 통한 연예인 껍질 벗기기가 유행처럼 번진다. '성형에 대한 진실을 밝히라'느니, '솔직하게 불면 면죄부를준다'며 방송에서 까지 덩달아 프로그램으로 끌어들여 시청률을 달군다. 물론, 웃고 넘어가자는 데 누가 덧말을 붙이랴. 그러나 도마 위에 오른 당사자야 말로 심지어 죽을 맛이란 걸 재미로 삼는 건 너무 가혹하다. 자고나면 뒤짚히는 여론조사의 퍼센트가서슬퍼런 칼보다 훨씬 여러 목숨을 담보하고 있는 건 아닌지부터 조사해 봤음 싶다. 여론은 정말 무한진화를 준비한다. 금년 중반까지 숨가쁘게 시달릴 먹이사냥인 '여론조사', 이제 더 이상 새삼스런 이슈가 아니다. 흐트러져 퍼지는 모양 안개 속의 조화를 나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다.

응답의 컨닝

숱한 고초 속에서 교원평가의 닻을 올린다. 그동안 근무성적, 성과급 평정만으로는 전문성 신장과 교육수요자 만족도 기대가 어렵다하여 꾸준히 제기돼 왔다. 따라서 3월부터 모든 초 중등학교에서 '교원능력 개발평가'가 도입된다. 교사의 수업과 학생지도 및 교장 교감의 학교운영 전반을 동료 교원이 평가하고 학생 학부모의 만족도 조사까지 종합적으로 포함한다. 창의와 경쟁력 있는 학교운영 자율권이 확대되어특색있는 교육과정 편성운영에 따른 책임경영 강화 등이 큰 변화라 하겠다. 시행을 앞두고 자질구레한 걱정거리도 늘었다. 동료에 의한 평가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학생과 학부모를 통한 만족도 조사가비중있게 자리하는 건첫번 째 부담이다.빠른 변화에 부합한 성장 동력은 여러 가지를 '아 옛날이여!'로 묻어놓고 만다. 청소시간에 교실 마루 바닥을 들기름 뿌린 손걸레로 닦으며구구단을 외던 때가 불과 몇 년 전 아니던가? 누르기만 하면답을 척척 내는 계산기가 등장한 뒤부터, 구구단을 암기 못해 나머지 공부하던 모습은 동창회 모임에서의 옛이야기로 낡았다. 인터넷 등장은 또 어떤가? 어쩜, 머리보다 손가락 놀림이 더 대우를 받으니머리는 도대체 어디에 쓰는 걸까? 없으면 보기 싫으니까 붙어있다고 한다. 혹자는 곱게 화장하기 위해 달린 것이란 대답도 나온다.미래를 여는 열쇠가 교육에 달려 있음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머리로 지혜를 얻어 가슴으로 행하는 교육'인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야 말로 종합 예술이다. 교원평가까지 응답 비율에 볼모 되어 자칫, 선생님의 열정과 품격높은 마인드와 철학이 웅크리면 어쩌나. 변화를 앞지른 지나친 기우일까? 안개는 유혹적이다. 보이되 잡기 어렵고 다가서면 늘 비껴서 이름지울 수 없는 부름을 듣게된다. 가르침의 앵글을 묻어버릴파고보다 숨은 보석을 찾아내는 '사람 중심' 키워드가 숙성 될 수 있도록선생님과 학생 학부모 모두의 동반 진화를 기대한다. 벌써부터 공교육 불씨인 순기능 응답율에 냉정해진다.

▲ 오병익
청주교육청 학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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