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등은 성이 차지않는 국민

밴쿠버 동계올림픽의 감동이 채 끝나기도 전인 지난 주 또 다른 낭보가 날아들었다. 장애인 동계올림픽에 나간 우리나라의 휠체어 컬링 대표팀이 강적 캐나다를 만나 접전 끝에 귀중한 은(銀)메달을 땄다는 것이다.

비장애인 올림픽보다 국민적 관심이 떨어진 상태에서 몇 명 안되는 팀으로 거둔 쾌거라 "야~"하는 탄성과 함께 더 한층 값지게 다가왔다. 그런데 이를 전하는 신문, 방송, 대부분 사람들이 없어도 될 사족(蛇足)을 붙였다. "아쉽게도~" "아깝게 금(金)메달에 그쳐~"라는 말이 그것이다.

참 희한한 일이다. 일개 국내대회도 아니고 전세계 한다는 사람이 모이는 올림픽에서, 그것도 2위를 한 게 어디인데 아쉽다거나 아깝다는 말이 그렇게 쉽게 나오는지 모르겠다. 선수층도 얇고, 변변한 훈련장이 없어 이번 휠체어 컬링팀의 경우 실내수영장 물을 얼려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끝에 거둔 성적인걸 감안하면 잘해도 보통 잘한 게 아니다. 물론 금메달까지 딸 수 있는 실력이었는데 그걸 놓쳐 애석하다는 위로가 포함된거라는걸 안다.

2등은 성이 차지않는 국민

그렇지만 올림픽에 나간 자체를 즐기고, 거기에 등수에 들어 동(銅)메달이라도 땄을 때 환호하며 팔짝팔짝 뛰는 외국선수와 임원진, 그런것에 아낌없이 환호를 보내주는 그 나라 국민들과 비교할 때 왠지 씁쓰름하다.

선수들도 분위기가 이렇다보니 은메달 갖고는 성이 차지 않는다. 그들이 원래 은메달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금메달 하나에만 목을 매는 국민성, 금메달만 메달로 쳐주는 야박함, 최고만 알아주는 비정함 때문에 그들 스스로가 변한 것이다.

오죽하면 저번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기라성처럼 나타나 우리나라에 처음 금메달을 안겨준 모태범 선수조차 "나에게 관심을 안보이는 게 서운해 독하게 마음먹고 뛰었다"고 할 정도였다. 결국 그 독기가 큰일을 저질렀지만 1등만을 중시하는 우리의 국민성을 그대로 보여줬다.

하기야 어디 올림픽뿐이랴. 대학 진학에서도 이는 여실히 드러난다. 2월 졸업과 3월 신학기 시즌이 되면 왠만한 고등학교 건물에 으레 커다란 현수막이 나붙는다. '×××○○대학교 ×명' '×××○○대학교 ×명' 등의 진학 실적을 자랑하는 글귀가 오가는 졸업생, 학부모의 눈길을 끈다.

최고 아니면 모두가 곁다리

문제는 여기서도 우리의 1등주의는 그 해괴한 빛을 발한다는 것이다. 속칭 일류대학 진학 현황만 쓰여져있어 거기에 끼지 못한 대다수 학생들은 곁다리가 돼버린다. 졸업식 때 장학금을 주는 것도 일류대학 위주다. 비록 일류대학에는 가지 못했지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소기의 목표를 이뤄 앞날이 기대 받는 사람까지 뒷전으로 밀린다.

그래서 몇몇 학생들은 아예 졸업식에 참석하길 꺼린다. 가봤자 남 들러리만 서는데 뭐하러 가느냐는 것이다. 학교만 그런가. 동네 학원에도 누가 어느 학교를 갔고, 누가 몇 등을 했는지 대문짝만하게 써붙여 학생과 학부모를 붙잡는다.

이러다보니 tv 개그프로그램에서도 우리의 1등주의는 단골 소재거리다. 그것도 좋은 의미가 아닌 현실을 비꼬고, 뒤틀려 돌아가는 세태를 꼬집으며 "1등만 기억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다소 과격한 표현까지 쓰여진다.

굳이 "꼴찌에게도 박수를 보내자"는 고리타분한 말까지는 안하더라도 좀더 여유를 갖고 애쓴 사람들의 헛김을 빼는 과분한 욕심을 버렸으면 좋겠다. 우리에게 '무소유'란 개념을 남기고 얼마전 입적(入寂)한 법정 스님이 1등만 좇는 우리를 보면 뭐라 할지 궁금하다.

▲ 박광호 중부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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