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때면 되풀이되는 '통과의례'

6·2지방선거를 50여일 남겨 놓은 요즘 '공무원 줄서기'가 화두다. 선거철 '통과의례(通過儀禮)'가 돼 버린지 이미 오래됐지만 남상우 청주시장이 최근 월간업무보고회 자리에서 "공무원들중 아주 일부가 특정 후보에 줄서기를 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는 말이 계기가 됐다. 민주당 충북도당이 즉각 성명을 통해 공격하자 한나라당 충북도당이 방어에 나서는 등 한 때 남 시장의 줄서기 발언이 정쟁화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6·2 지방선거와 관련해 공무원들이 선거에 개입해 적발된 건수가 43건에 달하고,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공무원들의 불법 행위가 늘고 있다고 한다. 선거 때만 되면 공무원의 줄서기는 '기본'이고 치열한 경합으로 누가 당선될지 모를 때 일종의 '보험'으로 부인이나 가족을 상대방 진영으로 보내 '양다리'를 걸치는 행태도 비일비재하다. '충성 맹세'나 '대리 홍보' 등 낯 뜨거운 짓도 마다하지 않는 게 공직사회의 현 주소다.

선거 때면 되풀이되는 '통과의례'

공무원들이 유력 단체장 후보에 대한 줄서기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것은 단연 '승진'과 '자리 보장' 때문이다. 누가 당선 가능성이 큰지, 자신을 챙겨줄 후보가 누구인지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승진을 앞두고 있는 경우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단체장은 공무원의 승진은 물론 보직 부여, 출연 기관장 임명 등 인사의 전권을 행사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어 줄서기 논란이 선거를 앞두고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공무원 줄서기가 논공행상식 선심성 인사나 보복성 인사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고질병'이 분명하지만 정년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공직자가 마지막 '승진 카드'로 사용하기에 이 보다 큰 매력도 없다. 얼마 전 경남 진주시 5급 공무원 2명이 현 시장에 대한 선거운동 혐의로 경찰에 불구속 입건됐고, 경남 밀양시 6급 공무원은 현 시장 당선을 위해 불법 선거운동을 한 혐의 구속되기도 하는 등 줄서기가 전국적으로 횡행하자 정부가 특별 단속에 나섰다.

중앙선관위가 행정안전부와 대검찰청 등 7개 정부기관 관계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회의를 갖고 줄서기 등 불법 선거 관여 행위가 인사상 특혜에서 비롯되는 만큼 내부 고발을 유도하기 위해 내부 고발자에 대해 최대 5억원까지 포상금을 지급하고, 고발자가 신분 노출로 소속 기관에서 계속 근무하기 어려울 경우 기관간 전·출입도 활성화하기로 했으나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고질적 병폐 근절책 필요

단체장이 당선되면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공무원은 외면하고, 상대방을 지원한 직원들에게 '보복성' 인사를 하는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고질적인 줄서기 관행이 근절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공무원의 선거 개입은 엄연한 불법이지만 워낙 은밀하고 치밀하게 이뤄져 법으로 규제하는데 한계에 부딪힐 수 밖에 없다. 일정한 원칙을 세워 철저히 감찰하고 처벌을 강화하면 공무원들의 활동이 위축될 수 있지만 그 또한 분명 한계가 있다. 따라서 공무원들이 선거에서 후보의 눈치를 보지 않도록 하는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직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공무원이 평가받는 인사 시스템이 필요하다.

단체장의 선심·보복성 인사를 막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 강구돼야 하고, 단체장의 인사권 제한 등 구조적인 문제도 손질해야 한다. 제도적 보완이 병행되면 공무원의 선거 개입 근절은 어렵더라도 분명 줄어들 것이다. 인지상정(人之常情) 때문에 어려움이 있겠지만 줄서기한 공직자를 당선자가 철저하게 외면하거나 오히려 불이익을 주면 뿌리 깊은 병폐는 점차 사라지지 않겠는가. 후보자들이 공무원 줄서기를 놓고 쓸데 없는 소모전을 벌이기 보다는 그들에게 불이익을 주기로 서로 약속하고, 당선자가 반드시 이행한다면 그 보다 큰 효과가 있을까? /김헌섭본보부국장

▲ 김헌섭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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