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h가 찾아와 내가 자신의 일을 소설화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아니라고 여러 번 해명했지만 h는 부득부득 소설속의 주인공이 자기라고 우겼다. 조목조목 내용까지 짚어가면서. 황당했다. 헌데 우습게도 그가 그렇게 우기니 나 역시 그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했다. 가만 보니 소설 속의 주인공이 그와 많이 닮아 있었던 것이다. 분명 그를 모델로 한 소설이 아니었는데.
현대인들의 삶. 비슷비슷한 공간 안에서 비슷한 사고와 감정으로 획일화된 일상에 행복도 고민도 비슷하게 닮아버린 닮은꼴의 삶. 지극히 관료적이고 비인간적이고 그래서 개인주의만이 팽배한 사회. 그 속에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울고 웃는 표정까지도 서로 닮아버렸다. 그러니까 난 대중사회 속에서 평범한 인간상을 소설에 그린 것이다. 그러니 당연 h가 자신을 쓴 거라고 오해를 할 수 밖에. 결론은 내가 지루하고 재미없게 소설을 썼다는 얘기다. 역시 낯설기 기법에 실패한 것이다. 다시 뭔가를 쓰기 위해 먹잇감을 찾아 배회하는 짐승처럼 생각주위를 어슬렁거렸다. 웬만한 것에는 눈도 깜박이지 않는 현대인들이니 고도의 낯설기 전략이 필요했다. 그런데 뜻밖이었다, 내가 그 어떤 고도의 플롯을 짜기도 전에 어떤 글쟁이가 터무니없는 글을 세상에 내놓고 말았다. 그랬다. 분명 이건 소설이었다. 현실에서는 상상도 못할 비극. 천안함 침몰.
2010. 4.15일 백령도 앞바다. 15초 동안 낮고 긴 기적이 울렸다. 그리고 44개의 흰 구명튜브가 스무날을 긴 침묵으로 일관하던 44명의 수병들 머리위로 던져졌다. 제발, 넋이라도 타고 오렴! 보는 모두가 눈물을 뿌렸다. 창밖에서는 하르륵 목련이 떨어져 내렸고 먼 산에서는 진달래가 붉디붉었다. 꽃이 피어 더 슬픈 건 처음이었다. 이제 그대들은 저 아름다운 꽃들을 보지 못하는구려. 안타까운 청춘들. 차디찬 암흑의 바다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추웠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오, 신이시여, 어떻게 이런 일이....
모두가 기적이 일어나길 바랐다. 그래서 69시간의 생존시간을 넘어서도 산소통을 밀어 넣으며 기대를 저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내 오늘은 기어이 부하들을 구해내고 말겠다'며 뛰어든 한 준위 죽음에도, '722사병들은 즉시 귀환하라'며 애타게 부르짖는 어느 네티즌의 절규에도 그 어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응답하라! 전선의 초계는 전우들에게 맡기고 오로지 살아서 귀환하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대한민국이 부여하는 마지막 명령이다" 그렇게 대한민국이 봄밤을 하얗게 722 천안함을 향해 명령했지만 끝내 그들은 묵묵한 침묵으로 돌아오고야 말았다. 반전은 없었다. 소설의 묘미는 반전인데, 이 소설에는 반전이 없었다. 사랑하는 자식과 남편과 연인을 그대로 가슴에 묻으라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가슴에 묻고 사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모르는 냉혈인처럼.
그동안 난 사회를 잘못 읽었다. 개인주의로 점철된 사회인 줄만 알았다. 그래서 버석거리는 단면만 그려내려 했었다. 내가 무디어져 있었던 것이다. 소년 소녀 가장들의 후원자, 가난한 부모를 위해 꼬박꼬박 월급을 모아 부쳤던 아들, 아내를 위해 한 땀 한 땀 수를 놓았던 남편, 전역하는 후배의 손에 돈을 쥐어준 상사. 세상이 이들로 인해 얼마나 따뜻하고 행복했는지 이제야 알았다. 곳곳에서 그들의 하얀 미소를 그리며 천안함을 돕겠다는 손길들이 줄을 잇고 있다. 유가족들의 슬픔에 동참하려는 온정들이다. 물론 그 무엇으로도 남편과 자식을 가슴에 묻어야 하는 유가족들의 상실감은 보상될 수 없다. 하지만 꽃다운 나이에 나라를 위해 스러져간 그들을 우리 모두가 함께 가슴에 묻는다면 그들의 아픔에도 조금은 위로가 될 것이다. 잊지 말자. 우리의 소중한 46명의 수병들을.
아! 722 천안함, 정말 한편의 소설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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