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미 칼럼]

2006년도 한국영화 투자손실액이 1000억원이라는 추정치가 나오고 있다.

한국영화를 바라보는 관객의 취향이 달라진 것인지, 아니면 영화인들의 예술감각이 떨어진 것인지, 그들이 그렇게 반대하던 스크린쿼터폐지의 영향인지 정확한 원인을 알 수는 없다. 아마도 이 모든 총체적인 것의 결과일 것으로 보인다.

근간의 투자손익에 대한 기사는 한국영화에 대한 매우 걱정스런 마음들을 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괜찮은 한국 영화 한 편이 천만을 훌쩍 넘은 국민들의 지친 영혼에 얼마나 유용한 피로회복제가 되었나. 이런 정성적인 평가 외에도 좀 더 실질적인 손익으로 들어가면 외화에 내주어야 하는 해외반출 비용이 점점 늘어가야 할 판이니 경제적 손실도 대단한 것이다.

그러나 정작 두려운 것은 투자심리의 위축 때문에 벌어질 한국영화의 하향곡선이 아니다.

돈이 되면 투자하고 돈이 되지 않겠다 싶으면 투자하지 않겠다는 오로지 수익 위주의 태도이다. 물론 돈을 벌기 위해 영화에 뛰어든 투자자들에게도 나름대로의 입장도 있겠다.

다양한 방식의 마인드 요구

자본주의 사회에서 왜 돈만 버냐고 나무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시대의 엔터테인먼트 사업이 수익창출에 유용할 거라는 기대감 때문에 유수한 대기업들도 투자를 다투지 않았나.

영화를 만드는 일은 냉장고나 과자를 팔아 돈을 버는 일과는 다르다. 영화는 오락과 철학을 동시에 전파하는 예술이다.

영화는 다수의 심리에 영향을 미치고 목적에 따라서는 그들을 움직일 수도 있다. 냉장고나 과자의 파급력이 개인이나 당대에 그치는 반면 영화는 다수를 향하여 여러 세대에 걸칠 수가 있다.

이러한 영향은 비단 수용자뿐만 아니라 제공자에게 있어서도 자신들의, 혹은 기업의 이미지를 향상시키고 그들의 사회적 역할을 보다 의미 있게 증진시킬 수 있다.

예술이 지니고 있는 이러한 비가시적 영향력은 투자자들에게 좀 더 다양한 방식의 마인드를 요구한다.

예전에 인도네시아에서 삼림을 이용하여 사업을 하고 있는 한 기업이 그들이 벌목한 자연만큼 묘목을 심어 미래를 준비하는 다큐 프로를 본 일이 있다.

목전의 이익이나 당대의 부귀만을 꿈꾼다면 돈 내고 이용하는 남의 나라 땅의 삼림 훼손 쯤이야 무시해도 좋을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수익과는 거리가 먼 환경보호 마인드를 가진 것이다.

근시안적으로는 이들의 이러한 태도가 경제효과와는 거리가 멀어보여도 결국 그들의 2세가 기업을 물려받았을 때 이들이 심은 묘목은 자본창출의 수단이 되지 않겠는가.

제작사나 배급사가 자본력에 따라 소수로 국한되는 현상이 있어 대체로 한국영화의 범위가 좁기는 하지만 눈썰미가 있는 관객들은 감독이나 배우는 물론 제작사와 배급사에도 관심을 갖는다.

넓은 시각으로 투자방향 결정

그리고 그들의 잘 만들어진 필모그래피를 거론하며 기대를 갖기도 한다. 그들의 모기업이 어딘지 아는 일은 아무 것도 아니다.

이것이 비단 영화가 기업의 이미지 제고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니 무조건 봉사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보다 넓고 긴 시각으로 투자의 향방을 결정하라는 것이다. 다소는 국민 다수에 대한 그들의 책임의식도 권고하고 싶기는 하다.

영화를 예술로 바라보는 투자자들의 미래에는 국민들 모두가 환호하는 효자영화가 선택될 확률이 높을 것이라는 예감이 깊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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