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료 계산 못하는 바보
문 닫힌 폐교에서 종소리를 듣는다 /선생님 말씀 그리운 체취, 군데군데 잡풀로 쓰다만 편지되어 돋았다 /딱지치기 하다가 종자까지 마르면 /분이 풀리지 않아 굴렁쇠 앞세워 운동장을 달렸다 /울 선생님 생각난다 칠판 가득 이름 앞에 꿈을 다닥다닥 그리게 하셨던…… /흑백사진 속 까까머리들 회초리 수만큼 더 자란걸까 /오를수록 작아지는 제 키 보며 /잠꼬대까지 손 넣어 확인하신 '바담풍'의 잔영에 화음을 붙인다/ 필자가 쓴 동시 '가르침의 화음'전문이다.
수업료 계산 못하는 바보
은사님 참으로 죄송스런 스승의 날을 맞습니다. 며칠 전,귀빠진 날에도 피붙이가 모여 촛불을 켜고축하노래에 건강과 인격, 가정이란 문패를 닦았는 데, 어떤 핑계로 이 날을 숨어 살아야할지 걱정부터 앞섭니다. 그래도 끈히 사제 간 삶의 점검과 함께 혹시라도 느슨했을 다짐들을 한번 더 조여맸건만 불량과자를 만든 엉터리 제과업자로 전락한 심정이니 아이들 요즘 말로 '부끄부끄'입니다.미꾸라지 몇 마리의흙탕물 때문에존경이 무너지고 자존심마져 개혁이란 돌풍을 안아야하는 현실. 기억이 안난다면 그만이고 아무리 뒤져봐도 하늘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다면 끝날 우리네 상식을 뛰어넘지 못하는 교육자적 양심에 돌을 던질 사람 누구겠습니까 오히려 묵은 체증이 내려갑니다. 그러나 가르침의 열정으로 우리들 세상을 열어주신 은사님께 어두워지신 귀를 뚫어드릴 말씀 한마디가 잡히지 않아 꼼지락거림으로 서성거립니다. 초등학교 3학년 되던 해, 사범학교 졸업 후 초임으로 오신 새내기 선생님과의 만남. 선생님은 꿈을 현실로 너와 나를 우리로, 오늘보다 내일이 있을 거란 확실한 믿음을 골고루 나눠주셨습니다. 가정방문이 예정된 날은 동네가 온통 선생님 맞을준비로 분주했습니다. 밀짚방석 위에 빙 둘러앉은 부모님과 선생님의 만남 자리에는 부침개와 찐 달걀 그리고 옥수수가 최고 차림으로 올랐습니다.비록 짧은 1년이었지만,'꼭 담임선생님 닮은 교사'가 되려는 평생 진로의 큰 희망을 얻게 됐습니다. 중간에 이런저런 엇박자로 뒤숭숭했으나 결국 초등교사 양성과정인 교육대학을 나와 곧장 교단에 올라 선생님 역할을 흉내내기란 예상보다 숱한 오류를 낳았습니다. 단순히 학식의 부스러기에 매달려 인재와는 너무 동떨어진 시작종을 울리고 말았으니 '사람으로서의 선생'은 이론처럼 들어맞는 게 아니었습니다. 아슬아슬한 고비도 경험하며 교직 20년이 막 지날 무렵, 인연의 끈은 필연처럼 선생님 계신 학교로 발령을 받아 교감과 교사로무한정의 a/s가 시작된 겁니다. 유리창 너머엔 시멘트 분진이 황사처럼 기웃거릴 뿐, 문화 혜택이라곤 전혀 없는 학교에 교실 두 칸 남짓 꾸민 갤러리에서 전교생에게 물감 붓을 쥐어주고 예술 싹을 틔워내던 선생님은 '변화에 대응하는 당신 만들기'의 실천으로 그때부터 벌써 방과후학교 로드맵을 공급하고 계셨습니다. 낮엔 아이들과 묻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퇴근 후면 곧장 서너평 쯤 씩 나눠진 사택으로 돌아와 선생님께서 가늠해 주신 쌀뜨물 부어 지은 밥과 실습지에 손수 가꾼 갖가지 반찬을 올려. 순전히 '사제표 브랜드'를 달구었습니다. 비 내리는 밤 부엉이 소리로 잠을 뺏길 때, 은사님께서 따다 주신 구절초 꽃잎에 코끝 대고 잠들던 비싼 수업료를 아직 계산 못하는 바보로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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