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이십년이나 함께 산 동반자와 사별했다. 혼자가 된 시인에게 안부의 인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머뭇거리다가 어떻게 사느냐고 참 바보스럽게 물었다. 시인은 나답게 살기위해 노력한다며 짤막하게 대답했다.

여우가 바다에 갔다. 여우의 구미에 당기는 먹음직스러운 물고기가 한가롭게 노닐고 있었다. 여우가 물고기에게 말했다. "물속은 아주 위험합니다. 사납고 큰 물고기가 잡아먹을지 모르고, 또 어부들이 그물을 던져 잡아갈지도 모릅니다. 뭍으로 올라오면 아주 안전하답니다." 물고기는 모여 의논했다. 여우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물속에는 여러 가지 위험이 있었다. 살아보지는 않았지만 여우가 제안한 뭍에는 큰 고기에 잡아먹힐 위험이 없었다. 그러나 물고기는 여우의 제안을 거절했다. "여우님 호의는 대단히 고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리 위험하다 하여도 그대로 바다에서 살기로 하였습니다. 그것이 물고기답게 사는 길입니다."

유태인이 자녀에게 들려주었다는 얘기다. 유태인의 역사에는 유태교를 버리고 민족을 배반하면 안전하게 살 수 있다는 유혹이 있었다. 유태인은 유혹을 거부하여 박해와 대학살을 당했다. 그래도 유태인이기를 고집하며 살고 있다. 물고기가 물에서 나와 뭍으로 올라갔다면 여우의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 고달프다고 사탕발림의 유혹에 넘어가면 재앙을 자초하는 것이다. 어렵고 힘들다하여 현실에서 도피할 수는 없다. 물고기는 물에서 물고기답게 살아야 한다. 여우는 여우답게 교활함과 속임수로 생존할 것이다.

'나답다'는 것이 무엇일까?

반드시 짚었어야 할 의문이다. 대답이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지금 나답게 행동하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그동안 말과 행동과 생각에서 나답지 못한 것이 얼마나 많은가.

일을 하면서 허둥대는 경우가 많았다. 가야 할 길과 가는 길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야 할 길을 눈앞에 두고 다른 길로 갔던 경우가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왠지 나만 피해를 볼 것 같은 막막한 판단이 빚은 잘못된 행동이다. 판단의 허둥거림이다. 내가 가야 할 길을 바르게 보지 못하고 있음이다. 유혹을 비판하는 능력이 부족해서다. 나를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으면서 교육이라는 틀에서 남의 미래를 가르치려 하고 있다. 아들에게 딸에게 너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강요했다.

선거가 있는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나다운 선택이 절실한 시기다. 교육감후보와 교육의원후보가 다투어 공약을 내놓았다. 당선이 되면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단번에 해결할 것 같은 공약도 있다. 실현 가능한 공약인지 여우의 사탕발림이 아닌지 바른 판단을 위해서라도 나다운 나를 찾아야 한다.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진정한 나를 찾아야한다.

▲ 김창식 청주 충북대 사대부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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