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빛과 초목이 날로 높아지고 푸르러지는 계절 5월이다. 아니, 솔직히 이젠 그런 표현을 쓰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한 낮의 아스팔트 열기가 후끈 달아오르는 5월이다' 라고 표현하는 게 정확하다. 지난 몇 주 전만 해도 기습적인 한파로 몸과 마음이 꽁꽁 얼어붙어 잔뜩 움츠렸었는데. 봄이 생략된 한반도의 계절. 아니, 봄이 스친 듯 지나간 자리에 여름이 성큼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피천득의 5월을 무색케 하고 있다.
수필가 피천득은 5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라고 5월을 표현했었다. 헌데, 지금 5월은 그가 말한 스물한 살의 얼굴처럼 청신하다거나 하얀 손가락에 끼인 비취가락지처럼 시원스럽다. 라고 표현하기에는 좀 부담스러운 계절이 되어버렸다. 왜, 무엇 때문에?
당연, 환경훼손에서 오는 결과다. 그래서 50년 만의 폭우가 쏟아져 150명 이상이 숨진 나라가 있는가 하면 중국의 북서부에서는 모래 폭풍이 도시를 휩쓸고 때 아닌 5월에 폭설까지 내렸다. 또 몽골은 전 국토의 90%에서 시작되는 사막화로 10년 후면 모래산으로 변한다는 소식도 전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이상저온 현상으로 농작물과 수산물의 피해는 물론 해가 거듭될수록 잦아지는 게릴라성 폭우가 올해도 예외는 아닐 거라 예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게릴라성 폭우를 발생시키는 아열대기후는 한반도의 생태계마저 위협하고 있다. 이 모든 게 끝없는 인간탐욕의 결과이다.
최근의 일이다. 모처럼 동네의 야산에 올랐는데 뜻밖의 풍경을 보았다. 50~60대로 보이는 여자들이 허리 높이의 어린 나무에 다닥다닥 붙어 막 잎이 펴지기 시작하는 어린순들을 훑어내고 있었다. 이 나무들은 2년 전 동(洞)이 산길을 조성하면서 심어놓은 나무들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잎이 식용인 나무를 심어 놓았던 모양이었다. 여자들은 이를 귀신같이 알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앞을 다투어 어린순을 훑어 담기에 바빴다. 푸릇했던 산길은 금세 앙상한 몰골로 변해 버렸다. 참으로 민망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더 민망한 것은 지나는 사람 아무도 이들을 만류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하지만 금방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이까짓 것 나무이파리 몇 장 따냈다고 무슨 난리라도 나는 것처럼 호들갑을 피우냐"고 그들이 오히려 당당한 기세로 날 나무랐던 것이다. 그 통에 난 '하나를 알면 열을 안다'는 옛 말로 응수할 기회조차 잃고 말았다. 분명 그들은 자신의 이익이라면 또 다른 자연 훼손도 가능할 텐데 말이다.
가정의 달 5월. 예년과는 다른 심한 기후변화를 느끼면서도 정작 우리는 지구 환경문제에는 나 몰라라 눈을 감고 있다. 인간은 자연을 거슬러서는 그 누구도 살아갈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말이다. '나 하나쯤, 그깟 쯤'이란 생각이 문제다. 이제부터라도 가정을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으로 우리가 몸담고 있는 지구의 건강도 알뜰히 챙겼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의 5월이 스물 한 살의 청신한 얼굴로 영원토록 유지되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모두가 환경지킴이가 되자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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