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골 할머니가 손자에게 '원두막' 삼행시를 듣게 되었다.

" 할머니!, 제가 원두막으로 삼행시를 지어 볼테니 운을 띄워 주세요."

" 그랴, 원!",

"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두!" " 두 쪽 다 빨개"

"막!" " 막 빨개"

할머니는 손자의 오물거리는 입 속에서 터져 나오는 이야기가 하루 종일 머릿속에 맴돌았다. 저녁이 되어 돌아온 할아버지에게 낮에 손주 녀석이 찾아와 건네준 삼행시 이야기를 자랑하셨다. " 영감! 낮에 손주 녀석이 찾아와서 재미난 이야기를 하고 갔는데 한 번 들어 보실라우? 어찌나 재미있던지 나는 하루종인 그 생각만 하고 있었다우."얼굴에 가득 핀 할머니의 미소가 내심 할아버지의 궁금증을 열어 놓으셨다. " 무슨 이야기인디 그렇게 재미있다고 난리여?" 할아버지의 질문에 이때다 싶은 할머니는 할아버지 앞으로 얼굴을 바짝 내미시고는 자신있게말씀하셨다. "'원숭이'로 삼행시를 짓는 이야기여유, 당신이 운을 한 번 띄워 보셔유" 할아버지께서 천천히 한 글자씩 운을 띄우셨다.

"원!" " 원숭이 엉덩이는 빨겨유""숭!" " 숭하게 빨겨유"

"이!" 그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할머니께서 고개를 갸우뚱 하시면서 마지막 한 문장을 이으셨다.

" 이게 아닌디...."

할머니의 건망증을 탓하면서 웃어넘기 기엔 나도 어딘가가 다소 움찔해 지는 부분이 있다. 얼마 전부터 운전을 하다보면 상가의 간판보다도 신호등보다도 눈에 더 잘 띄는 선거 현수막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걸 볼 수 있다. 채널을 돌릴 때마다 나오는 뉴스에서도 마우스를 클릭할 때마다 열리는 인터넷 싸이트에서도 후보들의 이야기, 당선되면 지키고픈 선거공약 이야기들이 밤하늘 흩뿌려져 있는 별들처럼 산재해 있다.

그런데 나도 이쯤에서 보면 원두막이 아닌 원숭이만을 기억하는 할머니처럼 후보나 선거 공약에서의 엉뚱한 것을 기억하고 있는 유권자가 아닐까 싶다. 상대방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의 핵심을 잊은 채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 것만을 부각시키면서 내가 전달받고 싶은 내용으로 각색하여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만드는 오월이다.

사실 선거라는 거창한 이름을 둘러대지 않더라도 어린이날엔 내 아이의 뜻을, 어버이날엔 내 부모의 뜻을, 얼마 전 스승의 날엔 내 스승님의 뜻을 내가 편한 대로 해석하며 의미를 부여하진 않았을까 싶은 마음에 괜시리 모두에게 미안하기까지 하다.

어쩌면 원두막 대신 원숭이를 기억하신 할머니는 가슴에 달린 카네이션보다도 커다란 선물바구니 보다도 낮에 찾아와 정감 정감어린 눈빛으로 대화를 해준 손주와의 시간이 더 없이 고맙고 소중하였던건 아닐까? 그래서 애써 기억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나도 이번 주말엔 어른들께 찾아가 원두막 삼행시를 멋지게 지어드리고 와야 할 것 같다.

▲ 김미혜 충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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