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운명

해 설핏 물가에 스밀 때 /풀어놓은 바다는 온통 금빛이다 /비늘 벗겨지도록몸 부비며풀어낸 얘기 그 설레임의 색조들 /보이지 않은 손자국으로 평생 자식의 무대를 챙긴 어머니 침묵처럼 /누룩 앉힌 발효된 술을 나눠드신 아버지 말씀 '이 다음 더 잘하면 되지'/어쩌다긴 세월동안 끝내쬐끄만 가슴 가득마알간 시만 차곡차곡 쌓아 주셨을까/필자의 동시'아버지 노래' 전문이다. 실수를 오히려큰 자산으로 챙겨 주시던 생전의 아버지는 표정으로 속뜻을 풀어내셨다. 말을 잘하는 사람과 수다와는 다르다. 지루하지 않으면서 공감을 끌어내는 말은 들을수록 당긴다. 음식 맛 이상으로.예부터 말 잘하는 사람을 일컬어 변호사로 칭해왔다. 요즘은달변가도 꽤나 많다.

말의 운명

그래 말품을 팔아 먹고사는 고급직업까지 다양하게 늘었다. 삶의 윤기로 살아날 기분 좋은 말이 얼마나 많은가? 같은 말을 가지고도 상대방의 마음 편하고 기운솟게 해주는 향내의 조련사가 있는가 하면 갈피를 잡을 수 없도록 마구 지껄여대는 콩팔칠팔도 있다. 묻지마식 으로 그럴듯하게늘어놓아 헷갈리는 말장난. 방송에서 조차 검증되지 않은 출연자들이 알아듣기 거북한 무국적 말을 쏟아내는 바람에 한참 말 배우는 아이들 걱정도 수위를 넘어섰다. 옛 시골 우리 마을에 말씀을매끄럽게 풀어내는 어르신 한분이 계셨다. 한학 서당도 운영하여 훈장님으로 통했고 어떤이들은 지방 재판관이라며 지위를 격상시켜 존엄의 대명사로 부각시켰다. 이유인즉, 이웃 간에 사소한 분쟁이나 종중의 다툼 등을 명판결로 가라 앉혀 재발없는 무탈의 해결사였다. 상대방 이야기를 무제한 다 들어주며 놀랄 정도의 특유한 화법을 펴셨다. 한사람 두사람, 자리를 떠도 반듯한 자세 한번 흐트리지 않은 채,중간중간 메모 하는 일까지 빼놓지 않았다. 결론은 늘 그랬다. '세상은 내가 조금 손해 본다는 생각으로 살면 맘 편한 것, 이만큼 씩만 양보하게…' 비록 속기록이나 의사봉 없이 진행된 심리와 종결였지만'삶의 지혜'에 대한 큰 깨침을 얻었다.

기(氣) 살리는 말

'아빠 힘 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세상을 이끌어가는 말, 그 시대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 역시 말 아닌가? 알고 지내는 사람 중엔 입만 바라보고 있어도 저절로 정화가 된다.상대방에게'믿습니다. 닮고 싶습니다. 그렇습니다.'를, 자신에게는'노력하겠습니다. 그러지도 못합니다. 아직 멀었습니다'로 엄격한 분이어서 곧바로 빠진다. 의사의 진찰결과 고개만 갸우뚱하는 바람에 무언이 생병으로 도져 죽는 줄 알았던 때가 있었다. 말은 그 어떤 무기보다강해 사람의 목숨까지를 마구잡이 독소로 담보하는 걸 자주 본다. 그래서 아마 나이들수록 '입은 닫는 게 낫다'고 한 걸까?말 많은 세상이다. '발 없는 말 천리 간다.'를 노려 일부러 말 만들기에 익숙함도 본다.'오늘까지만 이 가격에 드린다' 분명 하얀 거짓말이다. 판매에 엄청난 손해가 전제되나 사실 의심 쯤 접어둔 기분좋은 상용어다. '다음에 보자, 연락할게'를 밥먹듯 하는 사람을 질색으로 여기는 윗분이 계셔서 그 이후로 습관처럼 해오던 말까지 고친사례도 생각난다. 이유인즉,만날 때 마다 '다음에 보자'면 진짜 보는 건 언제인지 해답은 모호하다. 자리 모면용 새빨간 거짓말 아니던가. 영웅들은 말만 앞선 사람보다 말을 아낄 줄 아는 카리스마를 주문해 왔다. 어제 한 말이 오늘 바뀌고 또 내일이면 뒤집힐 말 바꾸기 선수는 표정하나도 흔들리지 않은 채, 이말저말 토해낸다.차라리 '그러려니'다물고 있음 중간쯤 가련만 침묵에 익숙하지 않은 그 놈의 입이 문제다. 비우고 낮아질 때 다듬어진 언어와 만난다. 기(氣)살려주는 말로토닥거리면 어떨까 우리 서로.


▲ 오병익
청주교육청 학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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