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변화의 시작은 늘 낮은 곳에서 시작된다. 학생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학생 개개인에게 잠재된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공간은 교실이다. 교사로서 가장 먼저 변화의 출발을 해야 하는 곳 역시 교실수업이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세미나가 개최되었다. 학력신장을 신장을 위한 창의적인 교실수업 방안을 주제로 국립사범대학부설중고등학교연합회인 국사련이 주최하고 한국교원대학교부설 미호중학교가 주관하였다.

부산서구청 wee센터 소장 조벽교수는 창의적인 교실수업 방안을 주제로 강연하였다.

학생이 위기 행동을 할 때 어른을 괴롭힌다고 판단하지 말고 도와달라는 비명으로 인식하라. 모르니까 학생이다. 실수는 학생의 권리다. 교사의 역할은 학생이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실수를 허용할 때 창의적인 사고가 가능하다고 하였다.

꿈은 희망을 가져오고 인성을 기른다. 청소년인 학생들에게 꿈마저 주입하려 하고 있다. 그것은 꿈이 아니라 악몽이다. 꿈을 박탈하고서는 인성을 기대할 수 없다. 교육은 두뇌에 많은 것을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두뇌를 더 크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주입식 교육은 확산적 사고력의 저해요인이다.

구구절절이 동감되는 내용이다. 하지만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 제한되어 있음이 가슴 아프다.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는 온통 대학입학 수능시험을 위한 단계라는 인식을 버릴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입식 교육과의 연결고리를 과연 단칼에 베어낼 수 있을까.

정답의 공포에서 벗어날 때 사고는 개방되고 유연해질 수 있다. 정답을 찾는 수렴적 사고보다 고정관념을 깨는 확산적 사고의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공교육은 대학입학 수능문제의 정답을 찾아내기 위한 순차적 행렬에서 이탈하지 못하고 있다.

'인류역사는 0.1%의 창의적인 사람과 그를 알아보는 0.9%의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 이끌어 왔으며, 나머지 99%는 잉여인간이다. 잉여인간이란 소수가 일으킨 변화에 감탄만 하는 수동적 인간을 말한다' 미래학자 제레미 러프킨의 말이다. 창의성 교육이 없이는 미래가 없음을 의미하고 있다.

교과서의 많은 페이지 중에 단 몇 페이지만이라도 글자가 없이 삽화나 그림으로만 구성하면 어떨까. 일주일에 한번이나 한 달에 한번쯤은 글자가 없고 삽화나 그림만 제시된 학습지를 활용하는 것은 어떨까. 채점도 없고 정답도 없는 학습지를 제시하면 학생마다 개방적이며 고정관념을 파괴하는 반응을 하지 않을까.

삽화나 그림은 시각적인 언어다. 글자가 없는 교과서 페이지는 교사뿐만 아니라 학생도 내용을 각기 다르게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글자 없는 페이지는 사고력을 확산시키는 학습이 가능하다. 설명이 없기 때문에 자유롭게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다. 그 상상은 엉뚱하고 진기하며 더 나아가 기발한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답에서 벗어나는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설명을 조목조목 첨가한다면 창의적인 생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근거로 글자가 없는 교과서와 학습지의 활용을 제안한다.

▲ 김창식 충대부중 교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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