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직지다. 이미 청주는 1887년에 청주에서 간행된 '직지심체요절'이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임을 유네스코에서 인정받았다. 청주는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인쇄 요람이다. 이는 굉장한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이고 이를 잘 활용한다면 지역발전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그동안 청주는 국내·외에 직지를 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직지의 이미지를 구축하고자 청주도심 곳곳에 직지 현수막과 싸인물, 조형물들이 세워져 있다. 또한 청주시는 직지란 명칭을 사용하는 많은 행사에 지원을 하고 있고, 최근엔 10억 원을 들여 금속활자를 복원 중이다.

그럼에도 청주가 과연 인쇄의 메카로서 어느 정도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지, 청주를 직지의 고장답다고 할 수 있는지 되짚어 보면 자신이 없다. 청주시의 정책은 아직도 과거 유산으로서의 직지에만 매달려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청주고인쇄박물관은 전시물의 내용이 별로 달라지지 않기 때문에 자주 찾아지지 않는 곳이다. 청주고인쇄박물관이 금속활자를 복원하고, 기존 국내 활자를 모아 조형탑을 만들고, 근대 인쇄기기를 수집해서 진열해 놨지만 그건 그저 옛 것을 모아 전시만 해 놓은 1차원적인 수준이기 때문에 그저 녹슬어가는 처연한 과거의 모습만 보여줄 뿐임을 주목해야 한다.

인쇄문화는 종이만으로, 활자만으로, 제본기술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전문적인 여러 분야가 어우러져야만 가능한 것이다. 과거에만 의존하는 직지로는 청주가 미래 인쇄문화의 꽃을 피우기에는 한계가 있다.

청주고인쇄박물관은 청주와 직지, 청주와 인쇄문화, 청주와 인쇄산업의 이미지 선점을 이루는데 중차대한 역할을 해야 할 책무가 있다. 이는 곧 청주의 과제요, 청주고인쇄박물관의 존재 이유일 것이다.

2003년도 청주인쇄출판박람회 때 전국서체공모전을 시행해서 수상작을 선정했음에도 실제 서체 개발은 흐지부지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반면에 서울 등 다른 시, 도와 기업에서는 몇 년 전부터 독자적 서체를 개발해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컴퓨터가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잡은 요즘 대표 서체는 이미지를 구축하고 홍보하는 데 그 가치가 무한하다.

뿐만 아니라 '직지 축제'도 '직지'에 걸맞은 전문성 있는 축제로 거듭나야 한다. '직지'를 떠올릴 수 있고 '직지 축제'다워야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청주시는 직지와 관련해 더 이상 실기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

도대체 청주시의 직지에 관한 관심 정도와 속내가 궁금하다. 직지공원도 좋고, 직지 홍보를 위해 수많은 예산을 집행한 것도 좋은데 청주를 기억해 내고, 직지를 가까이서 피부로 느낄 실재적 대안이 없는 것이 오늘의 '청주와 직지'가 아닐지.

디지털 시대의 도래로 기존의 인쇄환경은 급속도로 변해 과거의 인쇄유물은 거의 사장되고, 인쇄기기를 작동할 사람도 거의 찾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점점 사라지는 활판시대의 산물들이 희귀해지기에 이미 소장하고 있는 인쇄기기와 활자들을 활용해 인쇄문화를 꽃피울 끈을 이어나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청주고인쇄박물관에 수집된 근대 인쇄기기와 활자, 활판 등은 그저 전시용인 반면, 이미 서울 등 몇 군데에서는 컴퓨터의 등장으로 문을 닫았던 활판인쇄를 복원해서 출판하고 있다. 청주시와 청주고인쇄박물관은 이 점에 주목해야 한다. 직지가 오늘날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고 발전하는 것은 옛 직지와 현재의 인쇄문화가 공존해야만 가능하다.

그동안 여러 차례 이 같은 의견을 피력했지만 인력과 비용 등이 문제라며 시큰둥한 반응이다. 그동안 직지를 모토로 여러 사업을 벌여왔지만 딱히 청주에서 직지를 알기 위해 청주고인쇄박물관에 가는 것 말고 뚜렷이 보고 들을게 없는 현실임을 직시했으면 한다.

청주가 경쟁력 있는 도시가 되려면 지금과는 다른 시각과 운용을 검토해봤으면 한다. 시대의 변화를 주시하고 이에 대처할 수 있는 세밀한 대안 수립으로 청주가 직지를 통한 인쇄문화의 도시로 거듭나도록 토대를 구축해야 한다.

▲ 김태철 청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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