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40대 이후의 중·장년층이면 누구나 이 노래를 기억할 것이다. 어릴 적, 뙤약볕이 내리는 6월의 운동장에서 목이 터지게 외쳐 불렀던 6.25노래이니. 그때는 그랬다. 6월 이맘쯤이면 각 초등학교는 물론 중고등학교에서는 6.25노래를 비롯해 반공웅변대회, 반공포스터, 반공글짓기 등을 개최하면서 학생들에게 반공의식을 함양시켰다. 뿐만 아니라 이 무렵이면 극장이 없는 시골 오지학교에서도 반공영화만은 볼 수 있게 했었다. 그래서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세대들에게도 전쟁의 참상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게 했었다. 그 탓에 나 역시 전쟁에 대한 잔혹성과 공포는 상당히 실감할 수 있었다. 생각해 보니 그 시절 내게 전쟁의 공포를 잘 보여주었던 영화는 '낙동강은 흐르는가'였던 것 같다. 내용인즉,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오는 북한군과 이를 막아내는 특공대원들과의 공방전으로 특공대원들의 임무는 최후의 방어선인 대구를 지켜내는 것이었다. 즉, 북한군이 낙동강을 건너오지 못하게 교량을 폭발하는 일. 하지만 교량을 폭발하려는 결정적인 순간에 적군을 향한 폭발 스위치는 불발되고 17세의 나이로 자원입대한 천이병이 폭탄을 안고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교량을 건너려던 북의 탱크를 한 순간에 산산이 부서뜨렸다. 역시 갈기갈기 찢겨진 그의 철모도 꽃잎처럼 흩어져 내렸다. 어린 그가 자유를 지켜낸 것이다. 순간, 영화를 지켜보던 깜깜한 강당 안은 온통 훌쩍이는 소리였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밝은 빛 속으로 걸어 나왔을 때 우리는 가슴 벅차도록 행복함을 느꼈다. 찬란한 햇빛 아래의 평화로운 일상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지난 해, 행안부가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6.25 발발 연도를 묻는 질문에 20대가 56.5%, 30대가 28.7%, 그리고 40대가 23.0%나 모른다고 대답했다고한다. 또한 6.25 전쟁의 성격을 묻는 질문에는 66.0%가 북한이 남침한 전쟁이라고 답한 반면 나머지는 미국과 소련을 대신한 전쟁이 23.4%, 민족해방전쟁이 6.0% 그리고 남한이 북침한 전쟁도 0.6%나 차지했다고 한다. 즉, 전쟁이 일어난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아 우리는 전쟁의 참상을 잊었다는 설명이었다. 그 뿐인가.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기습, 판문점의 도끼만행, 버마 아웅산, 대한항공 폭파, 서해교전 등, 북은 늘 우리를 노렸는데도 우리는 사건이 터질 때만 그때서야 그럴 줄 몰랐다며 분개할 뿐 그들의 실체까지도 망각하며 살았다. 그 결과 우리는 또 다시 46명이나 되는 군인을 잃는 천안함 사건을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그 분노와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젠 현역군인이 중요 군사기밀 중 하나인 작계5027을 북에 유출시켰다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소식까지도 접했다.

바로 우리의 상실된 안보의식이 문제다. 교육과정에 들어있던 반공교육이 북한에 대한 증오심을 세뇌하는 반통일교육으로 인식되면서 교육과정에서 미미(微微)해진 탓도 한 몫 한 것이고. 물론 북의 행위를 과장되게 묘사시켜 적개심을 갖게 했던 지난날의 반공교육을 그대로 부활시키자는 말은 아니다. 실체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교육은 필요하다는 얘기다. 또한 그 같은 교육은 이데올로기라고 무조건 비난하며 반기부터 드는 태도도 이젠 생각해보자는 얘기다. 그러기에 우리의 전후세대들이 북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건 사실이니까. 더구나 북이 또 다시 서울 불바다 발언으로 우리를 협박하고 있는 마당에 참여연대까지 나서 나라의 분열을 조장하고 있으니 더 이상 안보의 끈을 늦출 수는 없는 일이다. 호국의 달 6월. 우리는 이 달이만이라도 전후세대들에게 6.25의 참상과 북의 실체를 정확하게 알려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그들이 오판(誤判)하는 일이 없을 것이며 또한 그것으로 인해 이 땅에 두 번 다시 비극이 찾아오는 일이 없을 테니.

▲ 신현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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