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납, 섬세하고 화려한 기물을 만들때 사용

<충청일보>종(鐘) 주조법(鑄造法)은 크게 밀납주조법과 사형주조법으로 나뉜다. 밀납주조법은 신라와 고려의 청동종 주조에 사용된 기술이며, 사형주조법은 조선 초기에 중국 철종 주조법의 영향을 받아 사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먼저 청동종 밀납주조공법(蜜蠟鑄造工法)은 밀납을 이용해 거푸집을 제작하는 방식으로 작은 방울이나 백제 대향로와 같이 섬세하고 화려한 기물(器物)을 주조하는데 많이 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범종의 경우도 상원사종을 비롯해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후기에 이르기까지거의 대부분이 이러한 방식으로 주조됐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와는 달리 밀납주조방식이 성덕대왕신종과 같은 대형종의 주조에는 맞지 않는다는 견해가 있어 왔다.2005년에 필자를 비롯한 국립중앙과학관 과학기술사연구실 연구진, 주종장(중요무형문화재 112호)인 원광식 선생, 문화재 복원전문가인 윤광주 선생이 함께 1950년 한국전쟁 때 월정사가 불타면서 파손돼 그 일부가 국립춘천박물관에 전시돼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선림원종을 이 밀납기술로 복원함으로써 대형종 주조 방법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사형주조공법(砂型鑄造工法)은 종신 단면의 절반을 모형으로 제작해 거대한 회전축을 이용해 속과 겉 거푸집을 각각 제작하고 조립해 주조하는 방식이다. 주조공법에서도 종고리의 용두조각에는 밀납주조기법과 마찬가지로 밀납을 사용해 조형한다. 하지만 종의 몸체는 여러 가지 문양을 지문판에 조각하여 찍어낸다. 일부에서는 종신의 크기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대형종의 주조에 적합한 방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15세기 초에 주조된 중국 최대의 영락대종(永樂大鐘)은 청동종으로 약 45t의 무게와 6.75m 크기를 갖고 있는데 중국학계에서는 이러한 대종이 곧 사형주조공법으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선중기 이후 용뉴가 쌍용이고, 비 신라적 문양이면서 무 문양에 가까운 종은 이러한 사형기법으로 주조됐을 것으로 생각된다. 1980년비 중반 펩세트(pepset) 주조공법이 도입되기 전 까지는 종의 주조에 이러한 사형주조법이 주로 사용돼 이전부터 쓰여진 공법임을 알 수 있으나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일부 변형돼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 주조공법은 회전판과 지문판을 사용해 외형틀에 문양을 찍어 새기는 방법이기 때문에 제작된 범종의 표면이 곱지 못하고 문양도 투박할 수밖에 없다.

'천공개물'에 보면 좋은 종은 구리를 쓰고, 하급 종은 쇠로 만들었으며, 청동종은 주로 밀랍주조공법으로, 쇠종은 사형주조공법으로 제작됐다는 기록(사진)이 있는데, 이는 밀랍주조공법이 질 좋은 종을 만드는데 쓰였음을 말해 주고 있다. 최근에 성덕대왕신종이 사형주조방식으로 만들었다는 견해가 제기되기도 하였으나 좀 더 깊이 있는 분석과 복원 작업이 있은 뒤에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 된다.

▲ 윤용현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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