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돈만 주면 상도 타고 작가도 된다는 공모전 심사문제가 보도된 후 지인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정말로 그런 일들이 가능하냐며 얘기가 오간 적이 있다.
세상엔 오만가지 여러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 예술계도 예외일 수는 없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예로부터 예술가는 이윤추구에 둔감해 가난하고 굶주려도 자신만의 작품을 위해 외곬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해왔고 이런 예술가의 작가 정신을 높이 사왔다.
그러나 이런 작가정신은 그저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전국공모전에서 벌어지는 심사 부정에 대해서는 유난히 말이 많았고 '~ 카더라' 통신이 이제야 사실로 밝혀진 것 일뿐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많은 전국공모 심사는 신뢰를 얻지 못했다. 특히 몇몇 분야는 그런 뒷말이 유독 많지만 대부분의 작가들은 관심조차 없다.
왜 공모전이 변질되어 왔는가? 첫째, 취미로 시작한 사람들을 상을 타서 작가가 될 수 있다는 허욕으로 부추겨 이득을 취하려는 일부 문화예술권력가들의 사욕과 둘째, 자신의 예술적 재능과 작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함에도 작가를 탐하는 과욕이 이런 풍토의 요체다. 점조직으로 뒷거래가 이뤄지는 탓에 의혹만 불거지다가도 결국 내부자 고발이나 당사자들의 문제 제기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는 것은 어쩌면 사필귀정이다.
보도에 의하면 그동안 대부분 사전에 상을 뒷거래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결국 이러한 풍토를 쇄신할 수 있는 사람은 공모전의 운영을 맡은 협회장이나 대회장이다. 바꿔 말하면 뒷거래의 책임을 논하자면 당연히 이들이 첫 번째다. 오래전 내가 충북미술대전 대회장을 맡았을 때 이런 일들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시달림도 받아 봤고 여러 유혹도 받아 봤다.협회장이나 대회장이 어떠한 사람들을 운영위원과 심사위원에 선정하는가에 따라 뒷거래가 좌우되기 때문이고 이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다.
예술계도 협회장을 회원들이 선거로 뽑게 되면서 과열양상이다. 특정 후보의 선거 운동을 해 당선되면 암묵적으로 심사위원 선정 등 여러 이권에 관여하여 자기 쪽 사람들이 상을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점에서 더더욱 선거에 열심이고, 물밑 검은 거래가 오간다는 점에서 기존 정치권의 선거 양태와 닮았다.
예나 지금이나 작가는 결코 학벌 좋다고, 머리 좋다고, 재산이 많다고, 지위가 높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특히 공모전에서 큰상을 받았다고 다 작가로 살아남지는 못한다. 대통령상을 받는 국전이 흐지부지 된 데는 다 그 까닭이 있다. '상'은 '상'일 뿐이다. 대다수의 작가들은 '상'과는 무관하게 자신만의 길을 가고 있다.
'상'이란 공신력을 지닐 때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공신력을 잃으면 '상'은 종이에 불과하다. 서너 달도 배우지 못한 초보자들에게 공모 참여를 부추기는 모습도 다반사다. 평생교육이 활발해지면서 뒷거래로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유혹은 점점 커졌다. 예술은 상거래가 아닌 정신세계를 지향한다. 그러나 이미 우리 주변엔 이런 문제들을 남 얘기하듯 그냥 용인하며 묻어가려는 경우도 허다하다.
무엇보다 돈으로 작가를 사고팔려는 사람들의 최대 피해자는 열심히 작업에 전념하는 작가들이다. 미꾸라지 몇 마리가 물을 흐리던 것이 어느새 집단적 권력형 부패로 예술계 전체를 물들이도록 간과해선 안 된다.
작가는 세상에 대해 인간에 대해 삶에 대해 관찰하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이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작품으로 표현한다. 스승이나 다른 작가의 작품을 그대로 모방하는 사람은 작가일 수 없다. 우리나라 미술계도 스승의 작품을 따라해 상을 받았던 사람들이 있지만 이들은 지금 화단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교육은 스승을 능가하는 제자를 키우는 것이다. 예술도 예외가 아니다. 스승의 예술세계를 뛰어넘어 이 세상 어느 작가의 작품과도 다른,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펼쳐 나가야 하는 게 작가의 책무이고 자존심이다.
돈으로 무엇이든 다 이룰 수 있다는 사고가 팽배하더라도 예술계만큼은 예술가로서, 작가로서의 책임을 생각하고 자존심을 지켜, 그간의 오명을 씻고, 스스로 떳떳하게 강건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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