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과 패기가 넘치던 시절에는 의식주를 해결한다는 일에 대하여 그다지 겁을 내지 않았었다. 그러나 일명 베이비부머로 불리는 나는 요즘 앞날이 불안하고 초조하다. 2명의 대학생 자식이 공부를 다 마치려면 아직 5~6년이란 시간이 필요하고, 그때까지는 직장생활을 계속하며 편히 전업주부로만 산다는 것은 생각조차 해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어제도 큰아이가 방학기간을 이용해 어학학원에 다녀야겠다고 했다. 매달 정해진 수입으로 살림을 꾸려나가는 나로서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아무리 여건이 어려워도 연기하거나 조정할 수 없는 최우선순위가 교육문제이니 웬만해서는 쓰지 않는 비상용 신용카드를 꺼내주었다. 열심히 온 힘을 다하며 살아오면서 기본적인 노후대책이야 마련했다지만, 앞으로도 얼마가 되는지 모르는 아이들의 교육비 감당이 몹시 힘들게 어깨를 짓누른다.

통계청은 지난 5월10일에 '베이비붐 세대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이라는 보도 자료를 내놓았다. 우리나라의 베이비붐 세대는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이들의 숫자는 현재 712만 5000명에 달하며 전체인구의 14.6%를 차지한다.

이 자료에는 베이비붐 세대 중간에 해당하는 b씨의 일생을 다루었는데, 나와 비슷한 1960년생이다. 가난한 시골에서 태어나 열악한 가정환경 속에서 성장했지만, 부모님의 교육열 덕분에 대학진학을 했고 산업일꾼으로 불리면서 열심히 살다가 지금은 정년을 앞두고 있다.

그는 6.25전쟁 후 출산 붐을 타고 태어나 급속한 경제성장과 인구구조의 대변화 속에서 살았으며 자치기, 구슬치기하며 친구들과 어울리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평균 65명의 과밀학급에서 초등학교에 다녔고, 중학교는 무시험으로 입학했으며 74년 고교평준화로 학원은 찾아보기 어렵던 고교 시절을 보냈다.

시골 작은 마을에서는 대학생이 드물던 시절에 교육열이 높은 부모님 덕분에 대학생이 되었고 졸업 후, 이 나라의 산업역군의 대열에 들어섰다. 나이 서른이면 노총각, 노처녀라고 놀림을 받던 시절에 혼인하고 자녀 둘 낳기 운동에 동참했다.

시골 출신이라 낯설기만 하던 아파트에서 살고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다니던 재래시장보다는 대형 상점을 즐겨 찾고 거기에 추가하여 집에서도 이용이 편리한 사이버쇼핑몰을 애용하다가 보니 상대적으로 소비지출도 늘어났다.

올해부터 은퇴해야 할 베이비붐세대의 노후준비가 상당히 미흡하다는 통계이다. 10명 중 8명은 노후의 삶에 대해 준비를 하고 있으나 준비능력이 없어서 일체 아무것도 준비를 하지 못하는 일도 있다고 했다.

이 자료를 보고 있자니, 마치 내가 살아온 이력을 그대로 적나라하게 보고 있는 듯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이제는 걸핏하면 지인이 아프다거나,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어제도 지인의 부군 사망소식을 들었다. 그는 아직 한참 일을 해야 할 나이이고 자녀도 고등학생, 대학생들이다. 1년 6개월 동안 투병을 하며 견디었지만, 결국 그는 간절하게 잡고 있던 생의 끈을 놓고 말았다.

우리는 부모를 봉양하고 마지막 시대이고 자식의 부양을 받지 못하는 첫 세대라고 한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살아온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재산도 그다지 많지 않고 자식의 교육비, 집 구입 등으로 앞만 보고 살다 보니 코앞에 노년의 삶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게 다가왔다.

사회에서 은퇴 후에도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사고로 다양한 취미를 즐기기를 꿈꾸지만, 현실은 이를 받혀주지 못해서 조급해진다.

이번 통계청의 자료를 보면서 새삼 노년의 삶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내게도 노년이 다가올 것이라는 막연했던 사실이 실제처럼 피부에 와 닿아 생각도 많아졌다.

▲ 한옥자 청주문인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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