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광고가 눈길을 끈다. "산수유~ 남자한테 참 좋은데...남자한테 정말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직접 말하기도 그렇고..." 이렇게 이어지는 광고 이후 이 회사의 매출이 20% 이상 신장했다고 하니 그 기발한 착상에 머리를 끄덕이게 된다. 아침 뉴스에서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22일 새벽, 4대강 공사 현장인 함안보와 이포보를 기습 점거하고 농성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불현듯 위의 광고 카피가 생각났다. 마음 같아서는 확~ 해치우고 싶은데 차마 그럴 수 없는 현실, 그 현실을 이보다 더 적확하게 표현한 말이 있을까.

살다보면 그런 일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 개인적인 관심사야 그렇다 치고 주요한 사회적 담론을 대하는 데 있어서 한없이 무기력한 자신을 발견할 때 드는 절망감, 그건 의외로 아프다. 그런 면에서 4대강 공사를 밀어붙이는 현 정부의 독선에 맞서 행동에 나선 그들의 용기가 부럽고 가상하다. 지켜볼 일이지만 이를 계기로 공사 강행의 속도전을 일시 멈추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단초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며칠 전, 휴가를 이용해 설악산에 다녀왔다. 친구와 동행한 그 길은 험난하고 지루한 도전이었다. 대청봉,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설악산을 이루는 최고봉. 그 산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폭염이 내리쬐는 여름임에도 겁 없이 길을 떠날 수 있었다. 배낭끈을 단단히 조여매고 오색약수를 출발한 일행이 장장 네 시간 여에 걸친 산행 끝에 당도한 대청봉, 내내 흐린 날씨이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악천후일 줄이야. 정상 턱밑에서부터 한기를 머금은 비바람이 불어오더니 아, 대청봉은 끝내 자기의 속살을 보여주지 않았다.

몰아치는 바람이 어찌나 거센지 몸을 가누기 힘들었고, 흐린 시계(視界)는 간신히 옆 사람을 구분케 할 뿐이었다. 제대로 볼 수가 없으니 정상 등정 사진은 감으로 대충대충, 선글라스를 끼고 한껏 멋진 포즈로 한 장 박으려던 기대가 비바람과 함께 후루룩 날아가 버리고, 장엄한 설악산의 물결마저 희뿌연 안개에 갇혀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어떤 수사에도 불구하고 대자연의 품에 안겨 맛보는 희열은 경험해 보지 않고 그 누가 알랴.

설악산의 비경을 예찬하자는 것도, 등산 경험을 자랑하자는 것도 아니다. 자연이 자연 그대로 있을 때, 그럼으로써 인간의 든든한 배후가 되고, 마침내 서로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세상이 되어 만날 때, 저 억센 비바람마저 뜨겁게 다가오리라는 희망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산이 거기 있어 오른다는 이들, 그들에겐 한 줄기 바람만 있어도, 골짜기 따라 흐르는 물소리만 듣고도 고개 숙여 고마워 할 줄 안다. 산을 오르며 만나는 야생초 앞에서 이름을 몰라 쩔쩔맬 지라도 그 보잘 것 없는 풀 한 포기, 세상 어느 것보다 귀한 것임을 안다.

다람쥐가 뛰어다니고, 도토리가 구르는 우리의 자연, 그러한 설악산은 이 산하에 지천이다. 그냥 두어라. 자연을 자연스럽게 거기 머물게 하라. 창조 질서의 섭리만이 아니라 우주의 원리는 인간에게 끊임없이 교훈을 주었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 산하에서 벌어지는 탐욕의 삽질은 아름다운 강산만이 아니라 모두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주는 것이니 이쯤에서 멈추었으면.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장마의 뒤끝, 아직도 마음은 거리낌 없이 다가와 던져준 먹이를 앙증맞게 먹던 대청봉의 다람쥐에게 달려가고 있다. 사람을 살리고 강을 살리라며 그 높은 공사 현장에서 두 손 불끈 쥐고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을 생명의 운동가에게 달려가고 있다.

▲ 김홍성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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