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에서 발생하는 일들을 조금만 신경을 써서 예의주시한다면, 정당하지 못한 일들에, 영악하기 그지없고 악착스럽기 짝이 없는 파렴치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쉬운 예로, 요즘 한참 이슈가 되고 있는 서민들의 "최저 생계비 보장"이나 공무원 윤리 위원회의 "민간인 사찰" 문제들에서 자칭 권력을 가진 자들의 행동들, 다시 말해서 본연의 자세를 상실하고 자아를 잃어버린 행동들이 그러함을 알 수 있다.

돈, 권력, 또는 지위나 명예 같은 것들에 편승하여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아니 자연발생적으로 약자가 될 수도 있는 서민들의 카타르시스(catharsis)에는 전혀 관심도 없으면서 약자들을 위에서만 군립하려고 하는 그들은 강자들 앞에서는 마치 그들 스스로가 약자임을 증명이라도 해보이듯이 '아부'와 '똘마니 정신'으로 팽배해져 있다.

이러한 사실들로부터 이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는 탐미주의를 넘어서 탐욕주의 같은 변질된 운명의 수레바퀴 속에서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회의 여타한 이유들 때문에 원치 않는 희생들이 강요 될 수도 있다.

"타인들의 행복 또는 불행을 발판 삼아 한 발짝 앞에 나가서 거짓된 행세를 부리며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

무한한 개성과 자아를 가진 우리 모두는 이러한 세상을 거부해야 한다. 사회통념상 획일적으로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세상살이가 아닌가?' 하는 무사안일한 생각도 가져서는 안 될 것이며, 우리들 중 누가 그들에게 허황되고 거짓된 행동들을 하게끔 허락해 주었는가에 대한 자문자책도 해봐야 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헤르만 헤세의 작품 데미안에 내재되어 있는 정신분석학자 융의 아브락사스(abraxas)에 대한 의미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아브락사스는 참과 거짓, 선과 악 그리고 빛과 어둠 등 모든 양극적인 것들을 포괄하는 하나의 신성으로 파악될 수 있으며, 또한 아브락사스는 우리 모두가 자아를 발견하고 자신을 깊이 생각하면서 어쩌면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카타르시스를 통하여 사회를 올바르게 인색하고 살아가도록 이끌어 줄 수 있는 멘토로써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없이는 살수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차피 우리 모두는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융화되어 울고 웃으면서 함께 자기 발전을 찾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받은 영향을 자기 자신에게로 이어지도록 하는 삶을 살고 있을까?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만약에 우리 모두가 자신에게로 이르는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써 진실한 삶을 살고 있다면, 요즘과 같이 탐욕에 편승하여 자신의 입장만을 내세우며 타인의 삶을 경시하는 거짓되고 혼란스러운 세상의 모습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우리모두가 자아를 잃어버리고 자기본연의 모습을 변색시키며 자신의 이기만을 추구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삶은 되돌아보지 않는 행동들을 하지 말아야 한다.

결국 우리는 자신을 돌아볼 필요성과 함께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 고민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을 찾는 것이야 말로 혼란스럽고 천박할 정도로 지쳐 버린 이 사회에서 자아를 찾아서 다른 사람들과 조화롭게 살아 갈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 박기태 건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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