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에 나설 줄 몰랐던 지도층

세상이 변한만큼 우리도 편하게 변하자고 만만하게 본 게 화(禍)를 불러왔다. "그까짓 거 갖고 뭘…"하며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가려다 된통 당했다. 국무총리 후보와 장관 후보 등 3명의 고위 공직자들이 줄줄이 낙마한 인사청문회 얘기다.

승승장구하며 지방정치에서 중앙정치로 화려하게 등극하려던 40대 국무총리 지명자가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벌써부터 차기 대권주자감으로 떠오르며 앞 날이 창창하던 젊은 정치인이 다시 일어서기 힘든 치명타를 입고 중도 하차했다.

청문회에 나설 줄 몰랐던 지도층

이번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를 보면서 두 가지를 느끼게 된다. 하나는 우리나라의 많은 지도층 인사들이 인사청문회 대비를 안했다는 것이다. 이는 뒤집어 놓고 보면 나중에 인사청문회에 나서게 될 줄 모르고 처신을 가볍게 해왔다는 말로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남들도 다 하는데 우리라고…"하며 한술 더 떠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있는 대로 행사하며 불법과 편법에 동승하다 걸렸다.

그러다보니 인사청문회가 없었으면 세상이 몰랐을 지도층의 그릇된 일탈 행위가 그대로 드러났다. 이제는 고위 공직에 오르려는 인사들이 언제 자신이 발가벗겨질지 모른다며 행동거지를 조심하게 됐다. 인사청문회가 가져 온 선물 아닌 선물이다.

인사 청문회를 보고 느낀 또 하나는 각종 비리 의혹을 바라보는 시각이 참 많이 변했다는 것이다. 위장 전입이 특히 그랬다. 예전 같으면 위장전입 사실이 드러나면 일단 도덕성에서 치명타다. 많은 공직자가 이 위장전입에 발목이 잡혀 인사청문회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낙마했다. 현 정권을 빼더라도 지난 정권에서 위장전입으로 망신만 당하고 중도 사퇴한 인사들이 한둘 아니다.

대표적인 게 지난 2002년 국무총리 내정자가 이 위장전입 유탄을 맞아 뜻을 이루지 못했고, 그에 앞서 1998년에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장관직을 잃었다. 2005년에는 경제부총리도 이 덫을 피해가지 못했다. 추상같은 법을 집행하는 법조계도 예외는 아니다. 이번에 대법관 지명자마저 의혹이 제기되며 이미지에 흠집을 입었다.

관대해진 위장전입

그런데 이 위장전입에 묘한 기류가 흘렀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불거진 의혹에 대해 처음에 두 손 들어 사실이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다 끝내 사실로 드러나 불명예 퇴진하는 양상을 보이더니 이번 청문회에서는 아예 대놓고 시인했다. 이유도 다양했다. "나이 든 부모를 모시기 위해…", "아이 학교 때문에…"등으로 둘러댔다. 어느 장관 후보는 5차례나 저질렀다고 한다.

노후를 생각해 쪽방을 사들였다던 장관 후보자는 미안하다며 문제가 된 쪽방을 기부하겠다고 선심을 쓰고 나오는 상황이 돼버렸다.청문위원(국회의원)들도 이 문제만은 비교적 관대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청와대는 "위장전입이더라도 자녀 교육 때문에 그런 건 봐줘야 되는 것 아니냐"는 이상한 두둔까지 했다고 한다.

'위장전입을 한 사람에게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 한다'는 현행 법(주민등록법)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지난 해에만 위장전입으로 759명이 기소돼 이중 149명이 정식 재판에 넘겨졌고 32명이 2억3000여만 원이나 되는 벌금을 냈다는 집계를 굳이 들이대지 않아도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결과적으로 3명의 후보자가 따가운 여론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자진 사퇴했지만 엄정한 잣대가 있어야 할 인사청문회마저 시류를 타는 것 같아 씁쓰레하다. 그나마 고위 공직에 오르려면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 보여줬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겠다.

▲ 박광호 중부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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