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 잊혀져가는 풍경 ①

세월이 흐르면 사람 사는 방식도 바뀐다. 기계도 기존의 아날로그에서 한 걸음 더 발전한 디지털로 탈바꿈한다. 그런데 사람 사는 건 기계처럼 단순하지 않다. 그 삶 하나하나에 정(情)이 배있고, 그 사람의 인생이 묻어있다. 우리가 살면서 편한 디지털에만 마음 뺏기지 않고 간혹 훈훈하고 사람 사는 냄새 나는 아날로그에 아련한 미련을 갖는 이유 중 하나다. 한 때 산업화 시대를 지나 고속성장 시기를 거쳐 우리 주변에 새로 생긴 직종도 많고, 반대로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 업종도 많다. 하지만 아직 곳곳에 우리의 지난날을 아스라이 기억시켜 주는 지난날의 풍경이 있다. 그 삶의 편린을 쫓아가 본다

40년을 바리캉과 더불어 살았지육거리 시장내 '친구이발소' 박병권 할아버지
요즘에는 손님들이 모두 미용실로 가 장사도 잘 안돼. 어제는 하루 종일 손님이 한 명만 왔다니까세월이 흐르면서 빠른 발전만큼이나 점차 잊혀져 가는 것이 많다. 이발소도 그 중 하나다.

청주 육거리 시장에서 40여 년을 '바리캉'(이발기구)과 함께하며 '친구이발소'를 운영하는 박병권씨(67).

40여 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이발소 한켠에는 머리에 '고속도로'를 만들어 내던 바리캉과 머리를 감을 때 쓰는 철제 양동이가 고스란이 자리잡고 있다. 박 씨는 자신의 청춘과 땀이 배어 있는 이발소와 이발기구 등을 바꾸지 않고 아직까지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16살 때부터 바리캉을 잡았다는 박 씨는 어린 시절 배가 너무 고파서 안해 본 일이 없다기술을 배우려고 찾던 중 이발사의 흰 가운이 너무 마음에 들어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처음에 어깨 너머로 일을 배울 땐 정말 힘들었지. 한번은 손님의 콧수염을 정리하다 실수로 한 쪽을 밀어버린 거야. 그래서 어쩔 수 있나. 다른 한쪽도 같이 밀어버리고 손님한테 된통 혼났지 뭐라고 추억을 회상한다.

박 씨가 처음 이발소를 운영할 때 이발요금은 30 원. 그러던 게 지금은 5000 원이 됐다.

하지만 그마저도손님이 부르는게 값이야. 어떤 손님은 3000원 주고, 또 어떤 손님은 8000원 주고 정해진 가격은 없다고 웃는다.

수년 전부터 '남자는 이발소, 여자는 미용실'이라는 인식이 깨지고 '꽃미남'을 추구하는 남성들이 이발소를 외면한 채 미용실로 발길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이발소를 찾는 남성들이 점점 줄고 있어 박 씨도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박 씨는 그래도 평생 이발사라는 이름으로 1남 2녀의 자녀를 키우고 결혼까지 다 시켰다앞으로도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한 계속 '바리캉'을 손에서 놓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이영헌기자 sme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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