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적 칭호는 큰 오류

<충청일보>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서 주인공인 돈키호테는 이상을 추구하는 기사로서 옳은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정의의 사나이'라고 그려져 있다. 작품 속에서 돈키호테는 자신이 하는 일들이 전부 다 이 세상의 정의를 위해서 당연히 구현해야 할 옳은 일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착각이라고 해도 이만저만 큰 착각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이미 알다시피 돈키호테는 여느 때는 정신이 말짱하다가도 기사나 기사도에 관련된 상상이 떠오르면 갑자기 눈을 부릅뜨거나 창이나 칼을 휘두르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정신에 이상이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돈키호테의 이러한 기상천외한 말과 행동을 보면서 우리는 박장대소를 한다. 그러나 아무런 생각없이 웃다가도 우리는 어떤 상념에 잠기게 된다. 우리 자신이 과연 돈키호테를 비웃을 자격이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든지 정도의 차이를 떠나서 돈키호테적인 성향과 소질을 지니고 있는 우리 모두는 어쩌면 위선자일지도 모른다. 여타한 사회적 배경과 권력에 편승하여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분수에 넘치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 비열할 정도로 협박을 이용해서 선량한 많은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졸렬한 사람들, 그들 모두는 정당하지 못한 이상을 추구하려고 망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일컬어 돈키호테라고 부른다.

여기서 우리가 그들을 돈키호테라고 맹목적인 칭호를 부르기에는 커다란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 같다. 돈키호테는 정말로 '순수한 동기'에서 그의 이상을 구현하고자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그의 착각이나 망상에는 불순하고 추잡한 요소가 전혀 들어있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판 돈키호테들, 예를 들자면,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으로 일관된 국회 청문회의 몇몇 인사들을 비롯하여 남의 땅을 빼앗기 위해 교묘하게 '토지 소유제도'를 악용하는 사람들 등, 이들 모두는 과욕과 탐욕으로 점철된 착각과 망상의 온상들이다. 오늘날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본의 아니게 또 다른 불량품 돈키호테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차이점을 가슴깊이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현대판 돈키호테들은 그들만의 사리사욕을 성취하기 위해서 돈키호테적인 망상과 광적인 행동들에 심취해 인생막장으로 치닫는 파렴치한 일들에만 전념하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그 자체만이 돈키호테적이지 돈키호테의 순수한 동기와는 전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돈키호테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로 경악할 것이며 땅을 치고 통곡 할 것이다.

설령 어떤 행동의 결과가 좋지않다고 할 지라도 그 행동에 대한 동기가 악의나 불순한 목적이 없는 순수한 것이라면, 많은 사람들로부터 관대하게 용서를 받는 것이 우리가 숨쉬고 있는 사회의 도덕률이다. 어떤 사람이 돈키호테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돈키호테적으로 순수하게 행동한다면 우리는 그를 동정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누군가가 불순하고 추악한 목적을 가지고 돈키호테적 행동을 가장한다면, 그것은 절대로 용서하지도 용서받지도 못할 일이다. 그는 우리사회에서 경멸과 지탄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하다. 아직은 우리 주변에 인간적인 순수함을 공유할 줄 아는 선량하고 마음따뜻한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며, 진정한 돈키호테를 갈망하는 상황들이 우리 주변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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