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에는 친정엄마 생신이라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였다.

여느 생일에서나 비슷하게 손주들의 생일축하 노래가 끝나고, 촛불이 꺼지고, 케익이 나뉘어지고, 밥을 먹게 되는 식상한 풍경이 우리 가족에게도 그려지고 있었다. 그리 멀리 떨어져 살지도 않지만, 우리 삼남매가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는 일 년에 몇 번 안 되는 기회이기도 하다. 차를 타면 10분도 안 되는 거리에 사시는 엄마를 오랜만에 보고 있으려니 그날따라 유난히 가늘어진 다리와 머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흰머리와, 투박해진 손이 자꾸만 눈에 거슬렸다.

"엄마! 나이가 들면 어떤 게 제일 아쉬워요?"

뜬금없이 궁금해진 내가 후식으로 나온 과일을 먹다말고 여쭤보았다.

"글쎄다. 나처럼 평범하지만 정신없이 살아왔던 늙은이는 젊은 시절에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하지 못한 아쉬움이 두고두고 후회로 남을테고, 젊은 시절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껏 누리고 살아온 사람들이야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지난 시간이 가슴 저리게 아쉬울테지.."

칠순이 되려면 몇 년은 더 있어야 하지만 강물처럼 흐르는 세월에 대한 아쉬움이 엄마의 시선이 멈추는 곳 마다 흘러들어 적시고 있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내 코가 석자라는 이유로 나는 당신이 무얼 하시고 싶어 하는지궁금해 하지도 않은 채, 내 일을 앞세워 내 어머니의 젊음을 하나씩 둘씩 앗아가고 있었던 게다. 가방을 들고 학교를 다닌다던 이유로, 혹은 결혼을 하여 맞벌이를 한다는 이유로, 어떤 날은 아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온통 당신의 희생만을 뻔뻔하게 요구했던 몹쓸 딸이었구나 하는 죄책감에 자꾸 물 컵만 들이켰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예전에 가족여행을 하면서 꼬마들에게 바깥 풍경이 저렇게 멋있는데 왜 자꾸만 안보느냐고 채근하는 동생에게 내 어머니는 그러셨다. " 놔 두렴, 여행하면서 세상 풍경이 눈에 보이려면 아직도 멀었단다. 나이가 들어서 저런 풍경을 볼 수 있는 계절이 내 인생에서 몇 번 정도 남았는지 가늠할 수 있으면 풍경은 저절로 아름답기도 하고 멋있어지기도 한단다."

그랬다. 어느 순간부터 된장찌개가 맛있고, 나물반찬에 젓가락이 가고, 가지나물이 혀끝에 착착 감기는 것이 느껴지더니, 봄날 나뭇가지 끝에서 솟아오르는 연녹색의 새순들의 향연과 가을날 붉게 물든 단풍 빛의 화려함이 보이기도하고 느껴지기도 하였다.

식사를 마치고 나는 친정엄마의 손을 잡고청바지를 파는 가게에 들렀다. 평소에 당신이 반짝이 청바지를 입어보고 싶어 하시던 것이 생각나서 이참에죄송스런 마음을 조금이라도 무마하려 했다. 늙어서 주책스럽게 무슨 청바지냐고 손사레를 치시는 것을 뒤로한 채 나는 엄마가 좋아할 만한 디자인을 골라 주었다. 조심스레 옷을 갈아입고 나오시는 엄마에게 나는 조금은 과장되었으나 솔직하게 외쳐드렸다.

"이야! 우리 엄마 청바지 입으시니까 이쁘네~ 뒤에서 보니까 꼭 탈렌트 같네"

▲ 김미혜 충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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