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는대로 살아야지요
최근 경기도 부천의 한 대학병원에 예약이 되어있어 조퇴을 하고 학교에서 나왔다. 비는 죽죽 내리는데 딸아 이를 주려고 농수산물 시장에 들러 키위 3박스를 사서 보자기에 쌌다. 한 손에는 반찬가방을, 한 손에는 키위보따리를 들고 헐레벌떡 터미널로 달려가 보니 1시 50분, 버스는 5분 전에 이미 떠났고 다음 버스는 40분 후에나 있다고 했다.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지난 번 서울에 갔을 때 과일 값이 너무 비싸서 조금 싸게 사서 갖다 주려 한 것이 그만 야단이 나고 말았다. 비는 부슬부슬 내리는데 차는 거북이 걸음을 했고, 부천시내로 진입하는 길목에서는 아예 꼼짝도 하지 않는 듯 했다. 예약시간 1시간을 훌쩍 넘겨서야 병원에 도착했다.
-되는대로 살아야지요
한 시간씩이나 예약시간을 어긴 환자를 청주에서 오느라고 얼마나 힘이 들었느냐며 오히려 위로해 주시는 교수님이 얼마나 고맙고 위대해 보이던지 젊은 교수님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평소 딸 아이에게 들어서 선배 교수님의 성품을 알고는 있었지만 어떻게 이렇게 환자의 마음을 너그러이 이해해 줄 수 있을까? 교수님의 인격이 위대해 보이기 시작했다.
문득 오늘 아침에 학교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열정적으로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선생님께서 잘못한 일이 있어 막 꾸중을 했다.
"얼마나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까? 얼마나 하루 종일 우울했을까? 그런 나는 정말로 자격이 있는 걸까……."
미안함에 얼굴이 화끈거리며 내 자신이 한 없이 작게만 느껴져 부끄러워졌다.
"그래, 내일 가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야지. 남을 너그러이 용서해주는 사람, 그가 진정 멋있는 사람이 아닐까? 교수님처럼 멋있는 사람이 돼야겠다."
-키위만 사지 않았어도
교수님의 뒷 모습이 정말로 멋져 보이는 하루, 나는 비가 오는데 서울에도 흔한 그 키위를 사들고 낑낑거리다가 병원 예약시간도 어기고, 부천서 청주로 오는 막차도 놓쳐 빗길 속에 서울로 돌아돌아 집으로 왔으니 눈물이 나도록 꼬인 힘든 하루, 그 누구를 원망하랴. 진정 멋진 사람은 남을 너그러이 용서하는 사람. 엄마노릇 하느라고 하루종일 수고했다는 남편의 말 한마디에 쓴 웃음을 지어 본다. 키위만 사지 않았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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