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마당>양산 논산 개태사 주지

산사의 아침이 더워온다. 무더위가 한창인 탓이다. 오늘이 처서인데 더위를 이기기 위한 매미의 울음소리가 힘차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의 입이 비뚤어진다고 하는데 올해는 좀더 참아야 할지 모르겠다. 여름이 길어지고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어 옛날 선조들이 계절의 변화를 알기 위해 표시해 두던 절기의 의미가 무색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계절의 변화와 함께 우리 사회의 모습도 이제 새로운 탈피를 하고 있는 것 같아 성급히 희망섞인 기대를 하게 한다. 몇 일 전 끝난 한나라당의 경선을 두고 세간에 희망이 보인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우려와 기대가 교차했던 그간의 과정을 잘 돌이켜 보면서 우리의 민주주의에 대해 새로운 희망을 갖게 한다는 긍정적인 이야기들은 다시 실망했다는 말보다 듣기 좋다.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는 최고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평가가 '그러면 그렇지', '아니나 다를까', '하는 꼴들이'라는 냉소적인 말들이 그들의 평가에 대한 주된 내용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이번은 뭔가 좀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경선결과에 깨끗이 승복하고 국민의 뜻에 따르겠다는 패배자의 선언은 우리 정치권에 새로운 부담을 줄지도 모른다는 의미에서 크게 환영하는 것이다. 다른 정당에도 커다란 부담이 될 것이다. 특히 최고 지도자가 되겠다고 나선 사람들 즉 당내 경선 출마자들은 이러한 본보기를 보이지 않으면 영원히 정치생명이 달아날 지도 모른다. 이제는 분위기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하던 이들 정치인들의 관행이 이제는 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가는 것을 그러한 이유이다.

그동안 약속을 저버리고 홀로 살길을 찾아 나선 정치인들이 많았고 그들 모두 결국 국민들의 선택을 받지 못해 스스로 쇠락의 길로 들어섰던 이들이 많았다. 국민들은 그동안 이들의 진흙탕 싸움에 신물이 났지만 뽑아놓은 일꾼들의 배신에는 가슴만 메어질 뿐이었다. 그동안 참아오는데 진저리가 났다는 이들도 있다. 절망에서 희망을 갖는 순간 또 다른 커다란 절망이 우리의 과거 정치를 그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국민들이 그동안 참아주고 또 참아주며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때문이다.

이들이 눈여겨봐야 할 사람들이 있다. 무더운 여름 건설현장에서 비 오듯 하는 땀을 훔쳐가며 열심히 일하는 인부들의 모습에서 성실성을 배워야 한다. 거친 파도와 싸우며 우리가 부족한 에너지 자원을 얻기 위해 밤을 새워 일하는 해외진출 노동자들에게서 우리의 미래를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해외 대학에서 밤을 밝혀가며 책을 읽은 젊은 학생들에게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연구실에서 밤을 새우는 과학자들에게서 우리 미래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경제가 살아야 한다고 모두들 입을 모으고 있다. 부의 불평등 심화로 상대적 박탈감에 괴로원 하는 이들이 있다. 자신의 삶을 버릴지 모르지만 자식세대에 대한 희망을 버릴 수 없어 고민하는 부모의 심정을 이해해야 한다. 이들이 모두 바라는 희망을 함축하고 있는 곳이 바로 정치다. 국민 모두에게 사회적 가치를 배분할 수 있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가 바로 서고 정직한 정치인, 약속과 신의를 지키는 정치인을 요구하는 것이다.

오랜만에 승자와 패자의 도리가 제대로 지켜지는 과정을 보면서 국민들의 오랜 인내와 희망을 저버리지 않는 지도자들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이제 조금만 더 기대해 보자

/ 양산 논산 개태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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