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불안석

홀로지는 물안개로 서성이다 /텅빈 수레가 되어 내려앉은 하늘을 맞았습니다./이런저런 수선스러움에 /야무지게 파고드는 갈바람 속으로 /어머니의 너름새 같은 발자국 소리가 들립니다. /꽃대를 들어올린 꽃잎처럼 /세월의 불쏘시개로 위대한 고향입니다. /김칫독을 유난히 아끼시던 어머니 /젓갈 한 국자 안 넣어도달큰하던 손 맛 /이젠, 핑계가 입버릇처럼 고여마음의 가난뱅이가 됩니다. /생전,'부끄러운 삶'을 천적으로 촌심가득 채워주신 혼불 /아직은 덧칠조차 부끄러워 /혹시, 기억조차 무뎌지면 어쩌나 /작은 울림이라도 전합니다. /침묵을 사랑하고 평생 자식의 무대를 꼼꼼히 준비하신 어머니 /하늘이 먼저 낮아지니 머리를 떠났던 생각들 자리로 옮겨앉고 /가을 달 쯤 뜨겁게 느끼고 싶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숨이 멎은 뒤 한참 후에야 눈을 감으신 당신 /어머니가 보고 싶습니다. 필자의 시 '어머니 발자국 소리' 전문이다.

-좌불안석

김장 때면 어머니는 배추를 절이기 전, 무청이 실한 무를 골라 가을 인삼이라며 팔남매 입안이 얼얼하도록 먹게 하셨다. 바로 트림을 하면 효험이 달아나니 소화가 될 때까지 '코를 자주 막아보라'고 주문하신 기억으로 이십여 년 전, 높은 산허리에 누우신 어머니의 김장 모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내 사랑 김치' '김치 주제가'엔 우리 김치의 여러 이름들이 나오고 '김치없인 못살아 정말 못살아'로김치가 한국인들의 식탁에서 가장 소중한 반찬임을 알리고 있다. 배추머리 코미디언이 요즘 부쩍 부름이 많아 스케줄 정리에 혼쭐나고 지난 해, 그냥 즐비하게 버려지고 갈아엎어 천덕꾸러기였던 신세에서 일약 지체 높은 몸값으로 귀한 대접을 받는 배추. 씨를 뿌린 여러 날 전 부터의 농심일기를 펼쳐보면 어쩜 당연한 논리다. 몇년 전, 중국산 김치 파동이 아직도 기인 그림자로 남아 지워지질 않는 데이번엔 중국산 통배추가 황후 대접을 받는다. 조금 참으면 공급에도 여유가 있을텐데. 그렇게라도 꼭 먹어야 했는지. 산호세 광산에 매몰되었다가 70일간 사투에서 살아 돌아온 33인과 칠레 인의 환호'치치칠 렐레레'처럼 나라가 달라지고 있다. 분명 '대-한민국'이란 감격의 눈물과 힘이 살아있건만, 우린 왜 달라도 너무 다른 채좌불안석일까?

-호들갑 세상

장학관에서 지원행정을 하다가 학교로 돌아오니 새 내기 기분이다.서먹한 부분도 많고관심사항 역시 달라졌다. 그 중에서도 시끌벅적한 아이들 웃음소리가 마음을 끈다. '교장 선생님 김치 왜 안드세요?' 보면 볼수록 해맑고 청순한 동심이 신비스럽다.'응, 아껴먹으려고...' 점심시간의 식사 풍경이다. 그렇게 고치기 힘든 식습관 중 하나가 김치에 대한 저항이다, 약먹기 보다 더 힘들었던 유치원아의 김치 리필 요구에 영양사 선생님의 식단짜기 까지 곤혹스러워졌다. 아마 음식도 유행을 타는 것이리라, 아니면 비쌀수록 더 당기는 우리네 식욕인가? 어떤 들녘에선 배추 좀도둑 바람에 땀흘려 가꾸기 보다 지키기가 더 힘들다는꽁트같은 사례도 전해진다.배추 3포기를 할인해서 구매하기 위해 5시간 넘게 줄서 기다린 사람들,손에 흙 한번 묻히지 않고도 거품을 쓸어담는 봉이형 선달. 한시적이긴 하지만 그 무겁다는 관세까지 펄쩍 건너 뛴 중국산 채소 수입 등등 따지고 보면 어정쩡한 우리네 세상사가 한 눈으로 찍힌다. 어디 그 뿐이겠는가? 국정감사가 열리자 마자이슈도 배추였다. '당신이 나라를 바꾸었다. 우리 칠레는 또 한번 도약할 것입니다.'광산 지하에서 인내하며 담아 낸 말과 비교해 보며호들갑 풍년인 우리를 비쳐본다. 위태위태한 김칫독이 침묵으로 뒤엉킨다.

▲오병익 청주경산초교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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