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요즘 시어머니 문제로 힘든 것 같아 함께 여행이라도 가자고 했다. 친구는 내 말을 듣고 아주 좋아했다. 우리는 오랜만에 고향인 충주에 가서 늦가을 단풍도 구경하고 맛있는 음식도 사먹자고 의견을 모았다

차안에서 친구는 내게 하고 싶은 시어머니 이야기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고 시인이 경영하는 우동집은 어떤 모습일까, 하고 내게 물었다.

"잔잔한 배경 음악이 흐르고 아늑한 조명이 시를 쓰고 싶은 분위기를 만들지 않겠어?"

친구는 그래, 그럴 거야. 하고 맞장구를 쳤다.

"그런데 우동 맛은 별로일 같지 않니? 맛보다는 멋으로 만드는 우동일 테니까."

나는 입까지 비죽거리며 가보지도 않은 우동집을 놓고 빈정거렸다. 그리고 멋만 잔뜩 들어 맛도 없는 우동을 친구와 마주앉아 먹는 상상을 했다.

물어물어 찾아간 우동집은 조그만 공원 귀퉁이에 있었다. 공원이라고 해봐야 몇 그루의 나무와 벤치 몇 개가 놓여있고 군데군데 버려진 쓰레기들이 우리를 흘금거렸다. '시를 삶는 우동집' 이라는 낡은 간판을 달고 웅숭그리고 서 있는 우동집을 보니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친구와 나는 여기에서 무슨 시가 나올까하는 눈빛을 주고받으며 널빤지로 만든 문을 열고 들어갔다.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주인보다 먼저 우리를 맞이했다.

우동을 시키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렇지만 어디에도 시인처럼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대신 벽과 천장에 낙서장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눈으로는 벽에 붙은 낙서장의 내용을 하나하나 집어먹고 입으로는 뜨끈한 우동국물을 후르륵거리며 마셨다. 우동 맛도 생각보다 괜찮았다. 그때 뜨거운 김을 토해내는 우동 그릇에 낙서장에 적어놓은 사연 하나가 텀벙 빠졌다. 나는 친구가 보기 전에 슬쩍 건져 책갈피에 끼어 넣었다.

"아줌마! 시를 삶는 시인은 어디 있어요?"

성질이 급한 친구가 물었고 설거지를 하던 아줌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꾸했다.

"시는 내가 쓰는데……."

친구와 내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아줌마가 통박을 주 듯 한마디 했다.

"뭐. 시라고 해서 특별대우를 해 줄 필요 있어요? 우동 반죽을 하며 밀가루에서도 조금 빼고, 우동국물 우려내며 거기서도 건지면 되는 거지요.

시는 별다른데 있지 않고 그냥 우리들 생활 속에 있다고 말하는 우동집 아줌마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친구와 나는 고개를 끄떡였다.

친구는 돌아오는 차안에서 장난스럽게 한마디 툭 던졌다.

"앞으로 시어머니를 대할 때 시어를 고르듯 정성을 다하면 나도 시인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친구 손을 가만히 잡아주었다. 그리고 따뜻한 친구의 손에 우동그릇에 빠져 익사 직전에 건저올린 낙서장에 적힌 사연 하나를 쥐어주었다. 노력 없이 지속될 사랑이 어디 있으랴

▲ 권영이 증평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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