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그루의 나무를 빌려서도 사람을 살필 수가 있다. 나무의 삶은 잎을 피우고 꽃을 틔워 열매를 맺는다. 나무는 이를 위하여 철따라 해야 할 일을 어김없이 한다. 다만 나무는 이러한 삶을 해마다 되풀이 하지만 사람은 해마다 새롭게 하려는 욕망을 갖는 것이 다를 뿐이다. 못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다고 한다. 그런 송아지 같은 사람은 어디를 가나 화를 만들고 남을 해치게 마련이다. 이러한 사람은 덜된 사람이고 모자란 사람이다. 나이만 먹고 철없는 인간을 싹이 노랗다고 한다. 나무로 치면 잎 구실을 못할 이파리에 불과함을 말함이다. 제구실도 못하고 떨어져 버릴 나뭇잎 같은 인간이 될 것인가 아니면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인가?
이러한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사람은 엉덩이에 뿔이 나지 않는다. 서툰 목수가 연장 타령을 일삼는다. 제 자신의 손재주가 없음을 한탄하지는 않고 연모가 나빠서 목수 질을 할 수 없다면서 핑계를 돌려 된다. 연장을 다루는 기술을 열심히 연마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연장이 집을 지어주고 농이나 궤를 만들어 준다고 생각하는 목수는 정신 나간 인간과 같다. 덜 떨어진 인간은 열매를 맺지 못할 싱거운 꽃떨기와 같다.
내가 할 일을 남에게 넘겨서도 안 되고 내 잘못한 일을 남의 탓으로 돌려도 안 된다. 일이 잘되면 그만큼 내가 땀을 많이 흘린 것이고 일이 잘못 되었으면 그 만큼 내가 빈둥대었거나 아니면 하는 척만 하고 속였을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꽃을 피울 수 있는 잎이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꽃일 것이다. 꽃을 피우려고 열심히 햇빛을 빨아들이는 잎과 열매를 맺으려고 열심히 향기를 피우고 꿀샘을 채워 벌이나 나비를 부르는 꽃은 영글고 속이 찬 결실을 얻는다. 그렇게 성취된 삶을 나무는 열매로 드러낸다. 사람 역시 그러한 열매를 맺기 위하여 삶을 살아가라. 그러나 그러한 열매를 얼마의 돈으로 따져서 생각하지 마라. 사람값으로 따져라. 그대는 난 사람인가 아니면 된 사람인가 이렇게 물어보라. 항상 이러한 질문을 자신으로 하여금 답하게 해야 한다.
못된 짓을 범하고도 무엇이 못된 짓이며 어떻게 하면 못된 짓인가를 모르는 인간은 참으로 딱하다. 무릇 못된 짓은 남을 해롭게 하고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다. 이를 안다면 사람이 자기만을 위해서 세상이 있다고 여기지 않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못된 짓은 결국 자기만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우에 비롯된다. 버릇이 없다고 남의 말을 들을 때 자신을 살펴볼 줄 아는 사람은 못된 짓을 범하기가 어렵다. 막돼먹은 짓은 스스로를 부끄럽게 한다. 하늘을 보고 침을 뱉으면 결국 그 침방울은 자신의 얼굴에 떨어지는 법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은 마구잡이로 행동을 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망측한 놈이란 말을 듣는다.
여름 휴가철에 세상을 떠난 사람은 불쌍하다고 어느 스님이 세상을 향해 흉을 보았다. 절에다 얼마의 돈을 주고 제를 어느 날 올려 달라고 부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제삿날이 되어 제상을 마련해 놓고 제를 부탁한 사람들을 기다려도 오지 않아 망자의 이름만 올려놓고 목탁을 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죽은 사람이 어찌 목탁을 치는 사람을 알아보겠느냐고 되묻고는 후손들은 멀리 피서를 떠나고 절간의 중놈에게 얼마의 수고비를 주고 제삿밥을 부탁한 꼴이라고 그 스님은 세상인심을 흉보았다. 제사는 목숨을 준 사람에게 고마움을 바치면 된다. 제상을 산해진미로 차린다고 예를 갖추는 것은 아니다. 이승을 떠난 영혼이 무슨 음식 타령을 할 것인가. 본래 제사 음식이란 산 사람들의 목구멍을 위해 마련하는 것일 뿐이다. 정성을 들여 떠 놓는 냉수 한 사발 가지고도 망자를 추모할 수 있는 일이다. 휴가철에 젯날이 들었다면 휴가를 간 곳에서도 얼마든지 제를 올릴 수 있을 터인데 이 돌팔이 중 보고 목탁이나 쳐주어 망자를 달래 달라고 몇 푼을 던져 놓고 가는 세상은 살맛이 없다고 그 스님은 망연해 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다. 내 인생은 내가 사는 것이지 남이 대신사는 것이 아니다 어느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는 것이다.
/윤한솔 홍익불교대 교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