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마당>송열섭 신부(청주교구 시노드 담당)

감사란 받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말이다. 반면 원망은 결국 받은 것이 없다는 표현이다. 언젠가 읽은 책에 의하면, 물은 고맙다는 말에 아름다운 결정체로 응답하지만, 원망의 말에는 그 결정체가 일그러진다. 그러니까 물도 감사의 말에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지만, 원망의 말에는 부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한다는 말이다.

받지 않고 한 순간인들 살아갈 수 있을까!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은 결국 받았기 때문이다. 임신과 출산을 통하여 소중한 생명을 전하여 받았고, 아주 오랫동안 보살핌을 받았으며 꾸준히 가르침을 받았다. 매일 먹는 밥 한술과 옷 한 벌도 깊이 보면 수천 수억의 사람의 손길이 닿아야 한다. 그러니 하루를 사는 나는 수천, 수억의 도움을 받아야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매 순간 마시는 물이나 숨 쉬는 공기, 그리고 대낮의 햇빛 모두가 결국 받은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부모 형제와 이웃에게는 말할 것 없고, 자연과 우주만물의 조물주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조상들은 새해 첫날에는 차례를 지내고, 한가위에는 햇과일과 곡식으로 음식을 준비하여 제사를 지냄으로써 조상의 은덕과 하늘의 은혜에 감사를 드렸다.
성당에서 매일 거행되는 미사도 결국 창조주 하느님을 향한 감사의 표현이다. 사실 미사를 뜻하는 희랍어 에우카리스티아(eucharistia)도 장엄한 감사라는 뜻이다. 이러한 '감사'의 의미가 얼마나 중요하면, 50년 동안 예수님의 다섯 상처를 몸에 지니고 사신 오상의 비오 신부님은 &amp;amp;amp;amp;quot;세상에 태양이 없어도 살 수 있지만, 미사성제가 없으면 살 수 없다.&amp;amp;amp;amp;quot;고 하셨겠는가!

세상에는 세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다.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까지 배은망덕한 사람이 이에 속하고, 원망과 불평이 주로 그의 마음을 차지한다. 다음은 보통 사람이다. 좋은 사람, 좋은 일에는 감사하지만 나쁜 사람 나쁜 일에는 원망이 따른다. 그래서 보통 사람에겐 행복과 불행이 교차되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세상사는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부류는 비범한 사람이다. 좋고 나쁘고를 가리지 않고 언제나 어디서나 감사하는 사람이고, 늘 감사하는 사람이기에 늘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감사의 묘약을 체험한 바오로 사도는 &amp;amp;amp;amp;quot;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amp;amp;amp;amp;quot;(1테살 5,18)라고 가르치셨다.

행복은 밖에서도 오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내 안에서도 온다. 즉 바로 내가 받고 있는 존재라는 깨달음에서 비롯된다. 그러니 감사는 행복의 첫 걸음이 아니겠는가? 감사는 또 다른 감사를 불러오고, 역경 중에도 감사로이 인내하다보면 결국 기쁨 또한 도래하기 마련이다. 오동나무도 몇 해 거듭 묘목이 잘려야 속이 꽉 찬 재목으로 크게 되듯이, 인생도 시련 속에서 속이 영그는 것 아니겠는가? 오늘날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현대인들이 불안해하고 불만족해 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감사를 등한히 하고 제 이익만 추구하기 때문 아닐까?

송열섭 신부(청주교구 시노드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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