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현연구관(국립중앙과학관)

전기가 사용되기 전까지 우리 조상들이 어둠을 밝히며 살아왔던 여러 가지 조명도구들 가운데 으뜸은 등잔이다.

등잔이란 동물성[어유(魚油)?고래기름], 식물성(참기름,콩기름 등) 기름을 담아 등불을 켜서 어두운 곳을 밝히는 용기를 말하는데, 재료는 불연소성 소재인 돌?토기?도자기?놋쇠?철제 등으로 만든다. 이러한 등잔에 솜?한지?노끈 등으로 심지를 만들고 기름이 배어들게 하여 불을 켜게 되는 것이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 "명아주실로 심지를 만들어 불을 밝히고 역사를 썼다"는 기록에서 선조들이 사용했던 심지의 재료가 어떤 것이었는지 알 수 있다.

등잔은 등경걸이?등잔받침 등으로 구성되는데, 종지형 등잔이 가장 기본적인 형태이다. 종지형 등잔은 지름 7㎝, 높이 5㎝ 내외의 크기가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1876년경 석유의 도입으로 널리 쓰이면서 형태도 인화와 휘발을 막기 위한 심지가 붙은 뚜껑을 덮는 폐쇄형인 사기등잔이 보급되었다. 이 등잔도 등경에 걸거나 좌등에 넣어 사용하였는데, 1970년대 초기까지도 전기의 보급이 안 된 일부 산촌지방에서 사용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발견 된 등잔 가운데 가장 오래 된 것은 평양 낙랑유적의 청동제 고배형 등잔이다. 고구려 쌍영총 고분벽화에 낙랑유적의 고배형 등잔과 매우 유사한 것이 그려져 있어 고구려 등잔 형태를 알 수 있는 좋은 예가 되고 있다.

신라의 유물로는 토기로 된 다등식등잔(多燈式燈盞)이 있고, 백제의 것으로는 무녕왕릉 감실에서 출토된 종지형 백자등잔을 들 수 있다.

낙랑출토품의 등잔은 여러 개의 등잔이 나뭇가지 형태의 가지 위에 얹혀져 각기 독립된 형태를 유지하지만, 고신라의 다등식 등잔은 4~6개의 등잔이 하나의 둥근 원통관(pipe)에 연결되어 기름을 한 곳에 넣으면 여러 개의 등잔에 일정한 유량을 유지하면서 불을 밝힐 수 있도록 과학적으로 고안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백제 무녕왕릉에서 종지형 등잔의 출현이후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등잔의 기본형태로 정착되었는데 이는 실생활의 용기로 광범위한 계층에 사용되면서 제작상의 간편함과, 등잔에 사용되는 기름이 인화성이 약한 동?식물성 기름으로 일관되게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등경은 이와 같이 낮은 등잔을 일정한 높이에 올려 사용하기 위해 창안된 것이다.

그러면 등잔에 담겨있는 우리 선조들이 활용한 과학원리는 무엇일까요? 등잔에는 심지가 담겨져 있는데, 바로 이것에 과학원리가 듬뿍 배어있다.

등잔의 기름을 빨아올리는 심지(wick)에서는, 섬유 사이의 공간이나 통기성 물질의 구멍에서 볼 수 있는 현상으로, 작은 관과 같은 통로를 따라 액체가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현상인 "모세관현상"을 살펴볼 수 있다.

모세관현상은 표면장력(表面張力) 때문에 생기는 것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물 속에 가는 관을 넣었을 때 물이 관을 따라 올라가는 것은 물분자와 유리벽면 분자, 또 물분자 상호간의 인력(引力)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이 인력은 특정한 높이까지 올라간 액체기둥에 작용하는 중력과 균형을 이룬다. 따라서 모세관의 안지름이 작을수록 물은 더 높이 올라가는 것이다.

또한 등잔의 빛은 연소 과정을 거쳐야 나오는데, 연소를 일으키기 위한 에너지와 불이 붙는 발화점 이상의 높은 온도의 필요성을 인지하였던 슬기로움도 찾아 진다.

조상들의 지혜의 산물이자 우리의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한 등잔에는 이렇듯이 현대 열과 빛에너지의 과학원리이자 생활속의 과학이 뿌리깊이 배어 있는 것이다.




윤용현연구관(국립중앙과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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