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입학
-나 홀로 입학
나는 취학 통지 없는 초등학교 입학을 했다. 적령보다 두 살 먼저 학교를 따라 나섰다. 당연히 선생님은 내 이름을 부르지 않으셨다. '제 이름이 빠졌어요.' 출석부에 이름을 써 넣으신 후, '오병익,오병익,오병익' 연거푸 세 번이나 이름을 불러주셨다. 부러워하는 친구들 뒤로 하늘을 오른 듯 기뻤다.입학식을 마치고 교과서 몇 권을 들고 집에 들어서자 어머니를 향해 '내 이름은 세 번이나...' 대뜸 자랑을 쏟았다. 어머니도 반겨주셨다. 혼자 입학을 하고 온걸 대견해 하신 거다. 그 때부터 '공부할 놈'으로 점찍으신 아버진 공책 두 권과 연필 한 자루를 선물로 주시더니 이것 저것 기대가 많은 눈치셨다. 담임선생님은 참으로 신기했다. 하루종일 반 아이들에게 글자와 함께 소중한공동체 생활을 가르치며 1번부터 끝번까지 번갈아 칭찬해 주셨다. 수업이 끝나면 운동장에서 팔을 힘차게 젓고 발맞추는 행진으로당당한 하루 일과를 마쳤다. 보고, 듣고, 느끼며 꼭 크진 않더라도 자신의 꿈을 갖도록 좋은 추억들을 만들어 주셨다. 요즘 신설학교의 웅장하고 화려함에 비j하면 지금은 비록 옛 모습으로 외형적 초라함이야 어쩔 수 없으나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후배들이 앞으로도 머물 모교니 더없이 소중하고 생각 켠켠마다 멀쩡한 그림을 채우고 있다.
-졸업 '자장면'
창의력으로 승부해야 하는 지식기반사회에서최고의 덕목은 무엇일까? 재미와 행복이 동반되는 창의적 문화가 개인은 물론 국가 경쟁력의 핵심일 수 있다. 소소한 것에서 즐거움을 발견하는 사람에게는 매일의 삶이 축제요 창의력으로 이어진다. 개선해야 할 '문화의 문제'로 판단하여 관계기관 및 ngo와 함께한 예방과선도 덕분에 지난 이맘 때, 여기저기서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집단폭행, 알몸 인간탑 쌓기 등 졸업식 뒤풀이가 사라졌다. 또 교육을 두고 후려친다. 금(禁) 보다는 합(合)이 먼저야 한다면서 패널들의 팽팽한 찬반으로 말이다. 선생님을 가마에 태워 졸업식장을 들어서고 축하하러 오신 부모님께 한복차림의 큰 절 올리는 모습이며, 친구와 가족끼리 소박한 기념촬영 샷터 소리가 제자리를 찾았다. 새것을 가지면 헌것은 미련없이 버리는 아이들 앞에 '헌것이 있어야 새것을 얻을 수 있다'며 손 때묻은 전통과 역사를 가르치신 선생님의 활짝 웃음도 함께 찍히는 듯 했다. 졸업식 끝나기가 무섭게 이리 뛰고 저리 내닫는 제자를 쫒아 숨을 헐떡거렸던 지난 영상도 이젠 먼날의 한 추억쯤으로 남았음 좋겠다. '얘들아,학교생활이 그렇게 힘들고 어려웠니? 밀가루 씌우기는 소비촉진을 위한 회사의 상술에서 유래했다지 '글로벌 인재를 숱하게 길러낸 유태인의 교육 철학은 '열심히 공부해라'가 아니라 '우선 잘 쉬어라'다.일주일에 하루는 꼭 쉬어야 할 일요일 조차 닥달하는 부모님과 마주앉아 먹은 자장면이 가장 멋진 졸업문화로 오래오래이름 불릴 것이다.
/오병익 청주경산초교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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