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익칼럼] 오병익  전 충청북도단재교육연수원장

강물 칠하려고 찍은 물감에 / 파랗게 깊어 가는 하늘 한 쪽. / 알밤 그려 볼까 고쳐 쥔붓은 / 나뭇잎 여기저기 흩뿌린 심술. / 고추 지붕 울긋불긋 한나절 되면 / 도화지 빼곡히 잠자리축제 / 필자의 동시 ‘가을 익히기’ 전문이다. 9월 바람에 이파리 흔들릴 땐 마치 서당 학동들 글 읽는 소리와 같다. ‘독서란 완성된 사람을 만든다.’ 했다. 그러나 인터넷·스마트폰 문화로 익숙해진 탓에 책의 홍수가 오히려 귀찮은 걸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도 없어 보인다.

독서의 달을 맞아 도서관마다 공연·강연·전시·체험·독서캠프 등 어쩌면 흉내 내지 못할 부분에 과감히 도전하여 행사를 준비하느라 애 썼지만 코로나 리스크로 줄줄이 무산됐다. 서프라이즈 기대마저 꼬였다. “청년으로서 글 읽기는 울타리 사이로 달을 바라보는 것과 같고, 중년으로서 글을 읽는 것은 자기 집 뜰에서 달을 바라보는 것과 같으며, 노년에 글을 읽는 것은 발코니에서 달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중국의 석학 임어당의 독서론 이다. 네 살 때부터 토·일요일을 거의 엄마 아빠를 졸라 아파트 도서실과 도서관에서 머문 초등학교 3학년짜리 하루 독서량이 60권인 ‘책 바라기 소녀’ 사례도 있다.

무심코 읽을거리와 놀다보니 좋은 친구 된 게 분명하다. 독서란 원래 계절 연령을 건너 뛴 평생 학습인데 우리나라 국민평균 독서량은 월, 한권 정도란 통계여서 마음과 정신의 굶주림이 아려온다. 으리으리한 도서관과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장서만 우두커니 고립된 독서 진상, 복기할 과제다.

다행스러운 건, 청주시 경우 시민 성장 동력을 독서에 담고 있다. 아이가 태어나면 책 꾸러미 선물과 함께 독서 문화서비스를 시작한다. 모름지기 다양한 생애주기별 프로그램인 ‘평생 책 읽는 시민’의 합류다. 특히, 올해 13회 째 청주시 1인 1책 프로젝트(시민작품 무료출판)역시 타시도 지자체의 베껴 쓰기를 견인해 화제다. 아무리 쾌속질주 시대라지만 그걸 뛰어넘는 테크놀로지, 책보다 앞설 마중물은 없을 듯싶다.

독서야 말로 최상의 자기 주도적 자양분이다. 소통 근육까지 단단해져 언어 농도도 기름지다. 비싼 돈 주고 샀다고 해서 읽기 싫은 책을 끝까지 인내할 필요는 없다. 독서 중간 중간 덮어버릴 책, 어디 한 두 권이랴. 관심분야가 아니면 지루한 게 너무 많다. 몇 쪽 짜리부터 서서히 분야를 넓혀야 멀미 쯤 수그러든다. 더 감각적으로 슬로건만 바꾼다고 독서 곡선이 갑자기 치솟을 리 만무하다. 오히려 앉혀놓고 다그치는 ‘독서의 달’ 부담에 책이 아프다.

코로나19가 삽시간 바꿔버린 초(超)연결 시대, 창조를 위한 비대면 정보기반은 필수 좌표다. 이런 저간의 사정에 눈 감고 있다간 도서관 여력까지 우려스럽다. 독서를 강제할 순 없듯 억지춘향 책사랑은 대부분 실패부터 거머쥔다. 독서진흥 키워드, 단언컨대 ‘책 곁(도서관)에서 놀기’다. 딴전 팔다 지치면 시나브로 ‘책과의 밀월 관계’에 빠진다. 필자의 40여년 교육경험 속 대표 답안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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